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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38-1 / 예상보다 이른 귀국과 자가격리 후기 (1)

by 누에고치 2020. 6. 9.

지난 15일 귀국하고서부터 블로그에 한동안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도 많았지만 가장 크게는 블로그에 털어놓던 일상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자유로이 말할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오버워치와 켄시라는 게임에 빠져버려 다른 취미에 이전보다 소홀해진 점이 있겠습니다.

 

원래 귀국예정일은 6월 5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9일 현재까지도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데에서 알 수 있듯, 노보시비르스크-인천 직항은 당연히 취소됩니다. 또, 비록 영사관에서 15일과 30일 양일에 귀국편을 계획했다고는 알려왔지만, 이르쿠츠크발 비행편이 취소된 이전 사례에 비추어볼 때, 불투명한 30일자 비행기를 타기보다는 확실히 일정이 잡힌 15일자 항공편을 잡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경위는 이전 글에서도 짤막하게 설명되어있습니다.

 

다만 공지가 기존보다 늦게 떴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예정보다 조금 급하게 짐을 싼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007 작전(?)을 통해 넉 달동안 썼던 비올라를 반납하고, 사감에게 퇴실을 통보하고, 교과서를 반납하고, 마지막 식료품과 집기를 정리하는 모든 과정이 1주만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우려와는 다르게 5/28, 5/30, 6/5 비행편 모두 정상적으로 운행되었지만, 2주의 격리기간동안 가족들의 정상적인 출근이 제한된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이른 귀국은 시의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동생의 격주등교조치가 재개되는 6월 초에 맞추려면, 5월 중순 귀국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습니다.

 

6월에도 러시아의 확진자는 가파르게 늘어나는 상황이고, 이 당시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모스크바는 노보시비르스크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기에 전자통행증 제도가 발효 중이었죠. 같은 공항에서 환승한다면 통행증이 필요없었겠지만, S7항공의 모스크바행 비행편이 도모데도보(DME)행이고 귀국 KAL편은 세레메티예보(SVO)발이였기에 택시로 환승하고, 해당 택시번호로 통행증을 발급해야 했습니다.

 

택시를 미리 예약해두는 게 좋다는 대사관의 말에 maxim 앱으로 모스크바 택시를 예약해두고 해당 택시번호로 통행증을 발급했지만, 귀국일 아침 확인해보니 다른 차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 택시를 불러둔 Citimobil 앱도 마찬가지로 당일 취소가 되어있었고요. (여러 택시앱을 쓰는 이유는 매커니즘에 따라 싼 구간이 그때그때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자통행증은 CHEMISOL님이 포스팅하신 프랑스의 외출사유서와 비슷하게 자기가 사유를 작성해넣으면 즉시 유효한 서류가 되는 구조였기에 택시를 잡은 직후에 입력하면 될 것 같아, 일단 유보한 채로 다른 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여담이지만 악센트급이 오는 택시에 소나타가 잡혀, 간만에 한국 택시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톨마쵸보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도 평소엔 보지 못했던 농업지대 부근이라 신기한 기분으로 도착했어요.

 

 

코로나 정국으로 썰렁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정상 운행되는 국내선 터미널은 꽤 사람이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역시 나라가 커서 비행기만큼 도시간 이동에 편한 수단이 없는 것 같아요. 공항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고, 모스크바라는 바이러스 마계로 가기 전 마지막 평화로운 노보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넉넉히 도착했기 때문에 홍차와 간단한 감자빵을 먹으며 가족들과 전화를 했고, 딱 봐도 같이 귀국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국인 학생들도 목격했습니다.

 

S7항공 비행편은 입국할 때 탔던 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승무원들이 이륙 전 보여주는 인상적인 비상상황 시범, 알 수 없는 기장님의 랩방송과 끝내주는 영어발음, 승무원이 홍차 '쵸르니 차이'를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 옆자리와 앞자리에서 곤히 자는 러시아 아저씨들과 같은 풍경들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불과 4시간 가량의 비행이라 별 느낌은 없었습니다.

 

비행기는 비오는 날씨 탓에 꽤 흔들리며 도모데도보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착륙할 때마다 박수를 친다는 소문이 퍼져있는데, 러시아에 들락날락하는 동안 한 번도 그런 광경은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극한의 착륙 상황에서 박수를 치던 게 잘못 알려졌거나, 없어진 옛 문화일지도 모르겠네요.

 

모스크바에서부터의 얘기는 2편으로 분할합니다. 아래는 간단한 사진입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의 바깥 풍경. 노보시비르스크에는 변변한 산이 없다.

 

저 앞에 보이는 톨마쵸보 공항의 모습.

 

출국장 진입 후에 있는 간단한 부펫. 밀크티와 감자핫도그를 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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