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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38-2 / 예상보다 이른 귀국과 자가격리 후기 (2)

by 누에고치 2020. 7. 1.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국내공항은 아무런 검사 없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짐도 거의 10번째 정도로 나와서 금방 찾았죠. 내리자마자 공항 밖으로 나왔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착륙과정에서 말했듯이 날씨가 그닥 좋지 않았고, 쌀쌀한 날씨 때문에 택시를 기다리던 십여분 동안 콧물이 조금 났는데, 나중에 다루겠지만 이 콧물은 귀국 후 큰 문제로 작용합니다.


여러가지 앱으로 택시요금을 보고 가장 싼 맥심으로 불렀지만 잡히지 않는데다가 앱이 멈춰버렸습니다. 지난 3년동안 잘 작동했는데, 문제는 꼭 중요한 순간에 찾아오는군요. 맥심을 끄고 얀덱스 택시로 부른 뒤, 앱에 뜨는 차번호로 전자통행증은 즉시 발급할 수 있었습니다. 구술시험에 떨어진 사람 아니랄까봐 기사님이 전화해서 뭐라고 하는지 반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A2 승강장에 있다고 대답했더니 전화가 끊겼습니다. 눈치게임 성공. 역시 타자마자 통행증을 찍어가는 걸로 봐서는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긴 하나봅니다.

모스크바는 노보시비르스크와는 다르게 마스크가 의무화되어있고, 곧 장갑 착용도 의무화를 검토하는 단계였습니다. 장갑은 그닥 효과가 있다고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장갑착용과 관련해서는 순전히 대사관 주무관님에게만 들은 얘기라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네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심검문한다는 데에서 저는 푸코의 생명권력 이론이 떠올라버렸습니다.

택시를 타고서도 저는 안심하지 못했습니다. 첫째로는 맥심 택시 콜이 취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앱이 멈춰버렸기 때문인데, 어쩐지 승강장에 서 있을 때 전화가 각각 다른 목소리로 두 통 오더라고요. 이 때문에 저는 맥심 기사님에게 잘못 부른 것 같다고 사과하는 전화 한통, 맥심 고객센터에서 뭔가 오류를 감지하고 건 전화 한 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둘째로는 택시기사님의 현란한 드라이브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운전행태와 택시기사들의 엄청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제한시속이 100kph인 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하는 기사님과 가속이 그대로 느껴지는 연륜있는 차량의 상태, 주변 모든 차들이 뒤로 흘러가는 와중에 차선이 수시로 바뀌는 칼치기. 대단한 것은 그렇게 달리고 있는 와중에 3차로 차선변경을 감행하며 우리 택시를 앞지르는 또다른 택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속도는 제한을 살짝 웃도는 시속 110km 정도였고 기사님도 차선변경이나 장애물이 있을 땐 꼬박꼬박 전방을 주시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구형 엔진으로 시속 110km를 밟느라 풀악셀로 느껴졌다는 점, 그리고 고속주행중 앞차와의 거리가 5m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무서운 탑승 경험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겠네요. 그렇지만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세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란한 드라이브 실력을 뽐내신 기사님은 불이 꺼진 채 텅텅 빈 국제선터미널 입구에 저를 내려주면서 앞에 서있던 다른 택시기사한테 공항이 닫은 거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서있던 기사님 대답이 거칠군요. '비행편이 다 취소되서 없는 당연한 사실을 몰라, 멍청한 양반인가?' 우리 기사님은 응수합니다. '아니 손님 데려다 준건데 나보고 지금 멍청하다고 하는거여?' 말로만 듣던 러시아 남자들의 싸움을 보는 것인가 우려되었지만, 다행히도 대화는 거기서 종결되었습니다.

날이 선 두 택시기사를 뒤로하고 국제선 터미널(F)로 올라갔습니다. 텅텅 비어있고 한쪽 구석에 한국인들이 가득 있더라구요. 전광판을 보니 그날 국제비행편은 딱 KAL기 한 대여서 터미널에는 최소한의 직원만 근무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전체 비행예정표를 봐도 5월 국제비행편이 미처 10편이 되지 않더라고요. 유일하게 F터미널 입국장 밖에서 영업하고 있던 프렌치포테이토를 간단하게 사먹고 10만원이 추가되는 기준인 32kg가 넘지 않도록 짐을 재배분했습니다. 아무리 넉넉하게 잡았다고는 해도, 카운터가 열리기까지 꽤 기다려야 했습니다.


끊는 타이밍이 이상하지만, 적어두었던 여행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탑승수속 과정과 귀국과정은 3편으로 잇겠습니다.

 

모스크바 도착공항인 도모졔도보 공항. 날씨가 우중충했다.
출발공항인 세레메티예보 공항. 텅 빈 F터미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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