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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37 / 넉 달동안 썼던 비올라 반납

by 누에고치 2020. 5. 14.

생각보다 빠르게 귀국을 하게 되면서 예상과 조금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대부분은 생수, 미숫가루, 커피, 꿀, 샴푸와 비누 등 생필품의 사용량에 대한 것이라 폐기하거나 룸메한테 인계하고 가면 되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와는 다르게 비올라는 조금 안타까운 경우다.

 

러시아에서는 2020년 2월부터 법이 바뀌어 악기를 해외로 반출하기 위해선 행정관청에서 '악기여권'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 여파로 인해 5월 11일까지 웬만한 관청들은 다 문을 닫아버려서 보름 안에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예정보다 귀국일이 앞당겨져서 비올라는 결국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게 되었다.

 

우리 오케 악장님이 대입 시절 쓰다가 솔로를 하기엔 소리가 부족해서 바꾼 악기라는데, 실제로 소리는 굉장히 좋았다. 전공생이 쓰던 모던 동유럽 악기를 80만원에 사갈 수 있는 말도 안되는 기회였지만 놓치고 만 것.

 

원래 빌려쓰던 악기보다 훨씬 부드러운 소리를 내서 사오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더 적합한 사람이 쓰리라고 믿는다.

 

반납할 땐 악장님이 안 오시고 남편분인지 동생분인지 다른 분이 오셨는데, 문자를 '10분 안에 AA0000 은색 지프 차량이 갈 거야. 그의 이름은 알렉산드르. 그에게 악기를 넘겨주게.' 처럼 보내셔서 마치 비올라 케이스 안에 소총을 넣어서 비밀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것같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환상은 국민차량 니바에 국민반팔티를 입은 채 타고 있는 온화한 '요원'의 모습 덕분에 깨질 수 있었다.

 

연습은 열심히 안 했지만 그래도 줄도 바꿔보고 체감상 최소 반년간 쓸 것 같았던 악기였는데, 이른 귀국으로 헤어지게 되니 조금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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