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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공연 감상

2021.12.03 서울시향 롯데콘서트홀 공연 - [1]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관람후기

by 누에고치 2021. 12. 12.

2021년 12월 03일(금) 20:00 롯데콘서트홀

연주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지중배

협연 보리스 길트버그

 

프로그램

  •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 서곡 / Humperdinck, Hänsel und Gretel : Overture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 Beethoven, Piano Concerto No. 2 in B♭ major Op. 19
  •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1번 / Tchaikovsky, Symphony No. 1 in G minor Op. 13

 

서울시향 서포터즈 활동을 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친구에게 표를 받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요걸 보러 간다고 하자 '유명한 작곡가의 안 유명한 곡을 보는군'이라는 주변의 반응이 말해주듯 베피협 2번과 차이콥스키 1번은 대중적인 곡은 아닌 듯합니다. 사실 저도 워낙 차이콥스키 처돌이이기 때문에 차콥 1번은 여러 번 들어봤지만, 베피협 2번은 사실 거의 처음 듣는 곡이었습니다.

 

클래식 세계는 너무나도 깊고, 안 들어본 곡은 언제나 들어본 곡보다 많습니다.

 

본격적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Beethoven, Piano Concerto No. 2 in B♭ major Op. 19) 관람후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공연 직전에만 음반으로 잠깐 들어보고 사실상 처음 듣는 곡이었기 연주에 대한 감상평보다 곡의 구성에 대한 평이 더 많은 것 같네요.

 

*훔퍼딩크 서곡은 들을 때 메모를 해두지 않았고, 남아있는 심상도 없기에 부득이하게 평을 생략하겠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연주 후 보리스 길트버그와 서울시향 인사

 

1악장

고전적 도입부에서부터 베토벤의 초기 작품이라는 느낌이 풍깁니다. 초기 작품의 경우 모차르트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이면서도 낭만주의의 시대를 연 음악가... 그래서 초기 베토벤은 고전주의, 후기 베토벤은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곡의 상당부분에서 임시표가 붙어 3-4개의 플렛이 붙어서 더욱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더불어 튜닝도 살짝 낮게 한 듯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442가 너무 높다고 느끼는 편이라 이런 낮은 튜닝이 만족스러웠습니다. 

 

피아노 역시 맑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스케일 위주의 진행이 자주 보입니다. 역시 모차르트가 생각나는 초기 베토벤의 느낌입니다.

 

구성적인 측면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주 멜로디를 피아노가 거의 그대로 옮기는 식의, 즉 '대비'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에 충실했던 '고전 콘체르토'의 느낌이 납니다. 제1번 교향곡보다 시기상 더 이전에 작곡한 '초기 베토벤' 작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짧은 대비를 보여줍니다.

반복하자면 서로 약간의 꾸밈음이나 반주를 넣어주기는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주가 되는 부분과 피아노가 주 선율이 되는 부분이 확연히 분리되는 고전 콘체르토의 형식입니다. '라-파라-파도 // 시--도!'의 짧은 대비도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를 왕복하며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 역시 특기할 만합니다. (5:25)

 

고전적 콘체르토에서, 피아노가 연주하고 있을 때 다른 성부의 악기들은 단지 소극적으로 꾸며줄 뿐입니다.

 

한편, 콘체르토에서 독주자만을 떼어놓고 봤을 때 피아노의 사용은 베토벤 특유의 모든 성부가 꽉 찬 느낌을 자아내고 있고, 연주자 역시 그런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피아노가 점점 열렬히 치다가 절정의 부분에 오케스트라가 등장하는 넘겨주기의 방식 역시 고전적인 콘체르토에서 사랑받는 기법입니다. (그렇다고 낭만 이후 시대의 콘체르토에서 이런 기법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쇼팽 피아노 협주곡 역시 곡의 일부에서 비슷한 전개을 보여줍니다.) (5:50)

 

짐머만과 빈필의 연주(1991)에서 연주자인 짐머만 자신이 지휘까지 하는 모습

 

위 사진은 짐머만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1991)인데, 연주자인 짐머만 자신이 지휘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낭만 이후의 협주곡들이 이런 대조적 구성을 전혀 안 따른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규모도 크고 복잡해져서 별도의 지휘자를 두지 않으면 조금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예컨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지휘자 없이 협연자가 겸임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고, 사실 당장 베피협 5번 정도만 되도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관 역시 '(쉼)삣삣삣/삣삣삣삣/삐' 라는, 베토벤 작품에서 이후에도 많이 등장하는 리듬을 보여줍니다. (7:30)

 

이쯤에서 느낀 것이지만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번 연주에서 보여준 역량은 꽤나 높았고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킬 만했습니다. 물론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클래식 청자들을 완전히 만족시키기엔 무리겠지만, 훔퍼딩크를 연주할 때부터 현악기의 부드러운 소리와 조화로운 음향에 개인적으로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라세도레메도레 - 파미파레세라솔' 같은 퍼스트 - 세컨드 바이올린 간의 주고받기 역시 뭉개짐이나 디싱크 없이 깔끔하게 연주되었습니다. G. P. 이후 유니즌이 시작될 때 현악기 특유의 부드러움 또한 시향은 잘 살려낸 듯합니다.

 

'세- 세파, 파레, 레세' 라는 주 테마의 사용 또한 잊을만하면 등장해 완성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피아노는 상술한 베토벤 특유의 옥구슬 굴러가는 스케일 진행에 더해, 왼손이 악센트를 이따금 더하거나 화음을 쌓아 꽉 차게 해주는 익숙한 구성을 보입니다.

 

중간부분의 카덴차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상당히 비슷한 진행을 가진 곡이 있었는데, 당장 생각이 나지 않네요. 메인 주제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상기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솔-메-세-솔'과 같이 하강할 때의 화음에 충실한 베토벤적 진행 역시 너무 좋습니다. 역시 괜히 천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품을 살펴보노라면 베토벤은 정말로 화성의 마술사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2악장

2악장은 '솔 솔 라도 솔…'이라는 메인 멜로디로 진행됩니다. (계이름은 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악장에서 베토벤은 꽉 찬 화음으로 각 성부가 함께 연주하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베토벤 교향곡 제7번 2악장과 같이 병렬하여 등장하는 전개와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한편 파트가 번갈아가며 주목될 때 악장님의 사운드가 유독 눈에 띄게 나와주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구슬픈 오보에 소리 또한 2악장의 매력이구요…

 

pp 에서 ff로 갈 때 '라-시-미-파'와 같이 약간 끌리는 듯 진행하는 것도 영락없는 '베토벤다움'이었습니다.

 

2악장은 특히 상당히 조용한 파트가 많은데, 피아노는 종소리나 물방울 소리처럼 연주하고, 오케스트라 또한 엄청나게 세심히 피아니시모를 연주해주기 때문에 작은 소리에 미세하게 주목하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침묵에 가까운 고요가 찾아왔을 때 어중간한 메조피아노의 볼륨보다 더 주목하게 되는 것 같아요.

 

3악장

시향은 2악장이 끝나자마자 휴식 없이 바로 힘찬 삼악장을 시작했습니다. 3악장은 '레 레레 레레 레솔'이라는 경쾌한 멜로디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악장이며, 장난스럽고도 활기찬 구성을 보여줍니다.

 

보통 바이올린이 나와줘야 할 것 같은 첫 소절에 비올라와 첼로만 등장한다는 점도 (제가 비올라를 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왠지 눈에 띕니다.

 

사실 3악장은 필기가 더 없습니다. 뭐라고 쓸 새도 없이 경쾌하게 지나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반복되는 멜로디가 빠른 템포로 신나게 흘러가고, 너무 재밌게 들었습니다.

 

마치며...

언제나 그렇듯 다소 용두사미로 끝난 감상평입니다. 연주가 끝나고 바로 써야 남아있는 게 많고 떠오르는 심상도 많아 분량이 고르게 유지될 텐데, 항상 조금 써두다가 나중에 급하게 마무리해버리니 부실한 결론부가 만들어지네요.

 

그러면 다음 편에는 차이콥스키 1번 감상평으로 이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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