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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공연 감상

2021.12.03 서울시향 롯데콘서트홀 공연 - [2]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1번 관람후기

by 누에고치 2021. 12. 17.

2021년 12월 03일(금) 20:00 롯데콘서트홀

연주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지중배

협연 보리스 길트버그

 

프로그램

  •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 서곡 / Humperdinck, Hänsel und Gretel : Overture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 Beethoven, Piano Concerto No. 2 in B♭ major Op. 19
  •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1번 / Tchaikovsky, Symphony No. 1 in G minor Op. 13

 

지난 1부에 이어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1번(Tchaikovsky, Symphony No. 1 in G minor Op. 13) 리뷰를 작성해보겠습니다.

1부글 보러 가기 // 2021.12.03 서울시향 롯데콘서트홀 공연 - [1]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관람후기


간단한 소개: 작곡시기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1번

Tchaikovsky, Symphony No. 1 in G minor Op. 13

 

시기만 간단히 짚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교향곡 제1번은 차이콥스키가 1865년 루빈스타인의 지도 아래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한 직후 모교 교수로 재직하며 작곡한 곡입니다.(1866)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1862년 준공되었으니 차이콥스키는 1기 졸업생인 셈이죠.

 

곡이 바로 완성되지는 못했습니다. 루빈스타인의 감수를 받아 차이콥스키는 제2판을 완성했고, 이는 루빈스타인 지휘 하에 1867년 초연됩니다.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차이콥스키 스스로는 해당 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결국 1874년에 이르러서야 제3판으로 작곡을 마칩니다. 이 곡의 작곡기간동안 교수로서의 격무, 졸업작품에 대한 세간의 혹평, 고질적인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습니다. 제3판의 초연은 1883년 12월에 이르러서야 막스 에르트만스되르퍼 지휘로 이루어집니다. (см. Симфония № 1 (Чайковский), Википедия)

 

이렇듯 차이콥스키 작곡 인생에서 초기의 교향곡이라는 점을 알아두고 듣는다면 조금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1번 연주 후 지휘자 지중배와 서울시립교향악단 인사

 

1악장 "겨울 길에서 꾸는 백일몽"

Грёзы зимнею дорогой / Allegro tranquillo (4 = 132)

영어로는 Dreams on a winter trip이라고 번역되는 제목입니다. 겨울에 길을 나서서 마차나 기차 안에서 잠시 꿈을 꾼다는 것을 컨셉으로 잡은 것 같아요. 당연하겠지만 곡 전체의 분위기와도 잘 맞는 작명입니다.

 

역시 초반부 비올라의 활용이 돋보입니다. 사실 별 것 아닌데도 비올라 솔리만 보면 주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비올라 주자의 숙명인가 봅니다.

 

놀랐던 것은 이 곡이 제1번, 즉 처음 작곡한 곡임에도 이미 차이콥스키 특유의 느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여러번 수정한 뒤 최초 작곡 후 10년이 넘게 지난 1874년에야 완성된 곡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예컨대 '메 세 메 - 메 시 메 - 메 도 메'와 같은 상승부에서의 선율 구성을 보더라도 차이콥스키만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납니다. 베토벤과는 다르게 악기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주고받으며 상승한다는 나름의 공식이 존재합니다.

 

보통 1악장이 가장 길고 주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서 리뷰를 상세하게 적는데, 차콥 1번의 경우 이상하게도 단편적인 감상만을 열거해서 글로 풀어내기 애매하네요. 그래서 이렇게 리스트로나마 정리해봅니다.

  • 플룻 - 바순이 같이 나오는 부분이 조화로웠습니다.
  • 바이올린의 대단히 어려운 상승부를 잘 소화하였습니다.
  • 불안감이 고조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 베이스는 두 박 모두 피치카토를 튕기고, 팀파니는 엇박에만 쳐서 특이한 효과를 낸 것이 돋보입니다.
  • 후반부 '솔-세' 화음이 참 조화로웠습니다.
  • 피치카토의 적극적 사용이 드러납니다.

 

2악장 "음침한 땅, 안개낀 땅"

Угрюмый край, туманный край / Adagio cantabile ma non tanto (4 = 68)

2악장은 음산하고(угрюмый) 안개낀(туманный) 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입부는 마치 디즈니 동화와 같았습니다. 차이콥스키 곡에서 자주 느끼는 감상입니다. 이번 연주에서는 (악기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호른 삑사리를 제외하면 흠결이 없어 보였습니다. 물론 클래식 청자의 욕심으로 봤을 때 100% 만족스러운 연주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호른은 특성상 다루기가 어려운 악기라서 그 어떤 오케스트라 연주라도 약간씩의 삐걱거림이 있는 것 같아요. 시향 연주에서도 항상 조금씩은 그랬던 편입니다. 그래도 이 연주에서는 무난하게 커버했다는 인상입니다.

 

현의 사용

다른 선율들이 연주하고 있는 와중에 몇 마디 정도 크레센도로 튀어나오는 세컨드 바이올린... 너무 멋있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실내악, 예컨대 콰르텟 제1번에서 잔잔하게 비올라가 맡는 역할과도 비슷했습니다.

 

후반부로 가면 현악기가 마음껏 비브라토를 하며 풀 보잉을 하는데, 비올라 소리가 진짜 너무 좋았습니다... 감상노트에도 "소름이 쫙 돋네요"라고 적어뒀네요! 현악기 전체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비브라토였습니다. 바이올린의 끄는 온음, 첼로의 부드러운 보잉...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시향 연주에서는 첼로보다 오히려 비울라가 더 부각되었습니다. 첼로도 물론 잘 연주해줬지만 정말 차이콥스키는 "소름을 돋게 만드는" 구슬픈 현 활용을 보여주고, 시향의 연주도 그 것을 잘 살려주었습니다.

 

퍼바 유니즌도 G현에서 하는데 너무 좋았어요. 유니즌에서의 저음 풀 보잉이 악기의 배음을 전부 뽑아먹는 가장 쉬운 방법인가, 라는 짧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향 현악기 주자들은 또한 짧은 G. P. 이후 음이 다시 이어질 때도 너무 부드럽게 들어와줘서, 디테일을 잘 살렸습니다.

 

관의 사용

목관에 관해서는 2악장에서 크게 인상깊었던 부분은 없네요. 2악장 중후반부의 진행에서 목관은 오보를 주선율로 하고 플룻은 새소리 같은 장식음을, 바순은 아랫성부를 받쳐주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목관이 Fl-Ob-Cl-Fg 4부로 주로 사용된 것은 균형이 잘 맞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안정적인 소리였습니다.

 

호른의 사용이 인상깊었습니다. '도레미세도솔 라 시라 솔'의 메인선율이 호른으로 나오는 부분은 2악장의 백미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잘 작곡했어요. 공연 당시 메모해둔 것을 보면 정말 경이로움에 벅차올랐던 것이 생생하게 드러나는군요...

 

이 부분에서 차이콥스키는 다른 관악기의 개입 없이 담백하게 호른만으로 화음을 내고 있는데, 마치 '왕의 등장을 환영하는 나팔'이라는 중세 관악기의 역할을 다시 되살린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동물로 따진다면 사자나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사용이었어요.

 

차이콥스키의 선율은 '간지럽다'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2악장 후반부에서도 관악기 하나 없이 현악 4부만으로 꽉 찬 느낌을 대체 어떻게 낸 것일까요? 진짜 차이콥스키의 곡을 듣다보면(특히 실제 연주를 직접 들으면) 악마의 재능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렇게 연출했을까요? 진실은 차이콥스키 본인만이 무덤에 가져갔을 것입니다...

 

 

 

3악장 스케르초

Scherzo / Allegro scherzando giocoso (8 = 160)

다소 장난스럽고 엉뚱한 현악기의 사용이 돋보입니다. 피치카토유ㅏ 엇박 붓점리드늬 조합

 

역시 4악장으로 된 교향곡의 전통적인 3악장 구성에 해당하는, 3박 춤곡이 들어있습니다. 위 이미지의 도돌이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적절한 반복이 가미되어 더욱 춤곡적입니다.

 

그르렁거리는 듯한 첼로와 베이스의 프레이즈가 제시된 뒤, 이내 또 동화속 멜로디와 같은 선율이 등장합니다. '세 도메- 파라 솔 파메레'의 선율에서, (이후에도 여러번 등장하는) '솔oo/메o도/세o라/라o솔/라o솔/메o도/라oo/ooo'라는 선율로 넘어갑니다.

 

현악기가 너무 잘해줬습니다. 차이콥스키의 흐름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연주였습니다. 이러한 현의 흐름 속에 산뜻한 가을 아침 새가 지저귀듯 목관이 들어오고, 호른도 경쾌하게 살짝 발을 들입니다.

 

이렇게 이완된 분위기가 한동안 연출되다가, 갑자기 초반부 테마가 다시 등장하면서 긴장되는 템포로 돌아옵니다. ('도레도 레도 레도')

 

3악장에서도 역시 문단으로 풀어내기 애매한 단편적인 단상들이 몇 개 나와서, 이렇게 모아봤습니다.

  • '도레도 레도 레도 레도'를 연주하는 악기(뭔지 모르겠지만 중저음의 간지러운 악기)가 너무 듣기에 좋았습니다.
  • 프로그 부분을 쓰면서 송진 긁히는 소리가 나도록 세게 문질러야 하는 부분 또한 너무 잘 살려줬습니다. 
  • 팀파니가 끝나며 잦아드는 부분은 적극적 북 사용으로 현대 영화음악같은 느낌도 들었네요.
  • 첼로수석, 비올라수석 솔로가 있었는데 너무 잘 받아줬습니다.

 

여담이지만, 3악장이 상당히 성대하게 끝나는 바람에 정신 안 차리고 있다가 박수 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6번 교향곡 정도는 아닙니다... 그 곡은 정말...)

 

 

4악장 피날레

Finale / Andante lugubre (4 = 76)

바순을 중심으로 클라리넷이 개입되는 목관 앙상블은 언제나 포근하면서도 중후한 멋이 있습니다. 이 앙상블은 그대로 퍼바를 중심으로 하는 현악기가 받습니다. 앞에서 GP 이후의 재시작에서 부드러웠다고 언급했듯, 시향은 부드러운 현의 활용으로 전혀 이질감 없는 넘겨주기를 보여줬습니다.

 

4악장에서는 매우 긴 G. P.와 팀파니 울림의 활용이 돋보입니다. 정석적인 여백의 미 극대화라고 생각되네요. 이렇게 조용한 부분을 지난 후에 첼로 솔리가 나온다는 점 역시 정말 마음에 듭니다.

 

이후에는 멜로디가 전개되는데, 이 부분에서 다소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베토벤 합창 4악장에서 환희의 송가가 등장하는 방식과도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드디어 트롬본이 '레시솔 미 레 레시솔솔 피'를 솔로로 연주하면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여기서의 역할은 1812 서곡과 같이 격정적인 여타 차이콥스키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과도 유사하네요.

 

2악장부터 느꼈지만 비올라 주자들의 울림이 너무 좋은데, 심지어 이 곡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빅사이즈 비올라를 준비했나 싶은 상각마저 들었습니다. 실제로 좀 커보이긴 했는데 확신은 없네요 ㅎㅎ

 

'시솔 라시 레 도 파 시'라는 강력한 프레이즈가 4회 반복됩니다. 선율이 정말 조화롭고 쉴 틈 없이 만족스러운, 오감을 채우는 소리를 내주었습니다. 자리가 좋은 건지, 홀이 좋은 건지 너무나 꽉찬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짜라짜라짜라랏'의 프레이즈를 퍼바-세바가 서로 교차해서 연주하는 것은 정말 차이콥스키적인데, 시향은 이 까다로운 부분을 잘 살렸습니다.

 

항상 느끼지만 앉아있던 퍼커셔니스트들이 일어나는 것은 뭔가 '큰 것이 온다'는 징조 같아서 재밌습니다. 뭔가 억지로 누른 듯하면서도 잔잔한 고음현악기 하강선율 + 저음현악기 상승선율의 조합이 나오는데요. 예전에 스펀지에서도 나왔던 '끝없이 올라가는 소리'가 생각나는 구성이었습니다. 물론 훨씬 예술적이죠! 이러한 조합은 이내 깨져버리고, 다시 크레센도가 나타납니다.

 

결말부는 어딘가 촌스러우면서도 직관적이고, 열의에 찬 차이콥스키적 클라이막스입니다. 멀리갈 것 없이 1812 서곡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1812 서곡과 교향곡 제1번은 최종판의 초연년도가 거의 비슷합니다. 공교롭게도 두 곡의 작곡 시기는 달랐지만, 초연은 각각 1882(서곡), 1883년(교향곡)으로 단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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