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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영화-드라마-연극

[영화] 코미디의 왕(마틴 스콜세지, 1982)

by 누에고치 2021. 4. 7.

코미디의 왕

The King of Comedy

1982

마틴 스콜세지 감독

 

코미디의 왕 포스터

줄거리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접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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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희극배우 지망생인 주인공 루퍼드 펍킨(로버트 드니로)은 탑급 쇼 프로 진행자인 제리 랭포드(제리 루이스)의 퇴근길 환영인파를 제치고 차에 탑승해 쇼에 출연시켜달라고 청탁합니다. 난감했던 제리는 나중에 회사로 전화하면 연기를 봐주겠다고 돌려보냅니다.

 

펍킨은 이것에 고무되어, 좋아하던 술집 알바생 리타(다이안느 애보트)에게 자신이 곧 훌륭한 쇼 진행자가 될 것이고 제리하고도 친하다고 허풍을 떱니다. 펍킨은 제리가 말한대로 회사에 찾아가지만 당연히 제리를 만날 순 없었고, 이후 제출한 연기 테이프가 사실상 거절되고도 눈치없이 계속 찾아가다가 경비원에게 끌려나옵니다. 또, 리타를 속여 제리의 별장까지 찾아갔던 그는 제리 본인에게조차 험담을 듣고 쫓겨나옵니다.

 

계속 거절당한 펍킨은 극성팬 마샤(샌드라 버나드)와 함께 납치극을 계획합니다. 길을 가던 제리를 납치해 감금해놓은 둘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납치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쇼를 10분만 송출해준다면 제리를 풀어주겠다고 협박합니다. 방송국과 경찰은 쇼의 내용이 무해하다면 하라는 대로 해주겠다고 승낙하고, 결국 원하는대로 10분간 '제리 랭포드 쇼'에 출연한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된 채 체포됩니다.

 

석방된 후에도 펍킨은 유명한 쇼 호스트가 되어 '루퍼트 펍킨 쇼'의 진행자가 됩니다. 노이즈 낀 TV화면으로, 루퍼트 자신은 말하지 않고 소개음악만이 반복되는 쇼의 시작부분을 비추며 영화는 끝납니다.

 

감상평

택시 드라이버(1976)을 본 뒤 스콜세지의 다른 작품을 보고 싶어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실제 쇼 진행자이기도 했던 제리의 유려한 탑스타 연기와, 드니로의 허언증 연기가 빛을 발했던 영화였습니다.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당대의 스타들은 브라운관 속에서 반짝이던 존재였겠죠. 이와 대조되는 일반인 마샤와 루퍼트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스타와 관계가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마샤는 스타와 사랑을 맺고 싶어하고, 루퍼트는 자신도 제리같은 스타가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마샤는 제리의 퇴근길에 방해가 되는 극성팬 1일 뿐이고, 루퍼트는 바닥부터 천천히 올라올 생각은 하지 않고 한번에 뜨길 원하는 몽상가입니다. 둘의 몽상은 일반적인 형태로는 실행될 수 없었고, 그래서 둘은 납치라는 특수한 형태로 이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이들의 욕망은 실현되었을까요? 마샤는 납치 당일 제리를 묶어놓고 사랑의 말을 속삭이고 키스하지만, 제리는 이를 혐오스럽게 쳐다보다가 마치 사랑을 나누려는 듯 테이프를 뜯어달라고 한 뒤 마샤를 때려눕히고 탈출해버립니다.

 

한편 루퍼트는 황당한 납치사건의 범인임에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의 기묘한 구성은 이것이 진짜인지 의심케 합니다. 종전의 선명한 화질이 아닌 지직거리는 TV화면을 중계해주는 효과에, 루퍼트는 대사를 시작하지 않고 웃으며 서있고, 밴드는 계속 오프닝 음악의 마지막 구절을 반복해서 연주합니다. 더구나 영화 내내 루퍼트의 몽상과 현실을 번갈아 보여져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영화 최후반부의 시퀀스는 어쩌면 통째로 루퍼트의 꿈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영화보다 <코미디의 왕>에는 미장센이 월등히 적습니다. 뭔가 예술적인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면 차창을 부여잡는 마샤의 손, 관객 그림에 대고 연설하는 루퍼트의 뒷모습, 그리고 마지막의 '루퍼트 쇼' 오프닝 장면 정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이 고정된 씬을 조망할 뿐이라 영화 내용이 현실적인 사건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사실 정반대로 상당부분이 비현실적인 루퍼트의 몽상이라는 점도 재밌습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 -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가?

우리가 보기에는 루퍼트는 명백한 정신이상자이고, 허황된 꿈에 빠져 민폐를 끼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히 현실적인 존재일까요?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은 허황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현실에 적응해버린다면 체제의 변화란 있을 수 없고, 계속 똑같은 삶이 반복되겠죠. 머스크, 주커버그, 잡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우리는 들어왔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우울증 환자나 장기간 짝사랑을 한 사람은 오히려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합니다. 내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 우울증에 빠져 하루하루 낭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자각이고,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할 뿐 결국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현실적인 자각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자각은 현상의 해결을 부를 동력을 없애버리고, 그래서 심리적으로 침전하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현실성이 돋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어의 비즈니스 관용표현 중 하나인 '현실적으로 어렵다'에 관해 제가 예전에 써둔 글도 이 주제를 얘기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20.04.26 - [소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거절의 속뜻

 

아무래도 이 영화는 저처럼 내성적이고 내면의 자아와 많이 대화해본 사람들에게 많이 공감이 될 것 같아요.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어디까지가 허상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가? 나는 과연 훌륭하며, 남들에게도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해결하는 데에 정말 영감이 될만한 영화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택시 드라이버와 함께 이 영화가 <조커>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조커 본편을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조만간 시청해보고 정말 연관성이 깊은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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