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대 한국어의 거절 표현 중 가장 자주 들리는 말이다. 그만큼 부드러운 거절이자, 청자가 납득할 만한 표현이란 것이다.
우리는 모두 현실세계에 산다. 심지어는 이상세계를 그리는 사람들도 현실세계에 살아야 한다. 몇몇 아이러니한 역사적 일화들로 이는 증명되는데, 예를 들어 혁명세계를 꿈꾸던 마르크스의 밥값은 공장주 아들인 엥겔스가 대줬고, 초기 소비에트의 활동비는 혁명에 찬동하는 신세대 귀족들에게서 상당수 충당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표현은 힘을 가진다. 특히 자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그리고 각박한 현실을 모두가 견뎌내는 척박한 사회일수록 이 표현의 힘은 더욱 세진다. 한국은 아직 사람들의 각박함을 성장동력으로 삼는 나라이고, 그 각박함의 최전선인 일선 회사들로부터 '현실적'이라는 표현은 태어났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표현은 동시에 조금 거북한 함의를 가진다. 기본적으로는 거절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은 '네 생각은 너무 뜬구름잡는 소리'라는 것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 '네 생각을 실현하는 데에 자원을 들일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굉장히 무서운 생각으로, 모든 실험적 사고를 막는 표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실이 쌓이면 편견이 된다. 현실은 우리에게 제한을 거는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며 사랑하는 사람과 따듯한 봄날을 즐기고 싶지만, 내일은 출근날이고 동생에겐 고양이 알레르기가있는데다가 바깥은 미세먼지로 가득한 상황인 것이다. 수십년동안 쌓인 이 제한들은 우리 사고에 깊숙히 자리잡아 편견으로 자라나며, 우리는 어느순간부터 편견을 현실로 믿게 된다.
얼마전 학교 설계에 노력을 들여 모든 어린이들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독특하게 설계해온 건축가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러나 수십년간 성냥갑같은 학교건물만 인가해왔던 공무원에게 이런 학교는 과연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고, 도움되더라도 주변의 다른 학교와 비교될 것이며, 시도가 실패할 경우 본인이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말한다. "취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이런 건물은 기존에 없던 형태라 보안이나 형평성 문제가 있어 인가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 youtu.be/QxGzwJd_Eno?t=957 (15:56부터) 건축가 유현준의 EBS 세바시 강연
이렇듯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거절은 미시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선택이 된다. 크게는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있나'라는 말과도 그 방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의 일부로 살아가야 하고 톱니바퀴로 기능하게 되지만, 가끔은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2021-4-7 학교설계 문단 출처추가 및 다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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