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과 예술/영화-드라마-연극

[영화] 인 타임: 시간과 자본주의, 흔하지만 새겨둬야 할 비유

by 누에고치 2021. 2. 15.

 

본 영화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평소처럼 유튜브를 하릴없이 떠돌다가 영화 소개 채널에서 <인 타임>을 보고 '이거다!' 싶어서 즉시 영상을 닫고 왓챠로 들어가봤더니 다행히도 등록되어 있었다.

 

시간 자체를 유형의 물건으로 옮기거나 거래할 수 있다는 설정은 정말 여러가지 SF 작품에서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하일 엔데의 동화 <모모>에서 회색 신사들이 시가로 말아피는 '시간의 꽃'이 있겠다. <모모>에서는 평화롭게 살던 동네 주민들이 시간을 아껴 은행에 저축하고 나중에 돌려받으라는 회색 신사들의 꾀임에 넘어가 여유롭게 식사하던 시간, 앵무새를 돌보던 시간, 치매에 걸린 노모를 보살피던 시간, 동료들과 잡담하던 시간 등을 모두 없애버리고 오직 일, 일, 일에만 집중하게 되어버린 안타까운 현대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영화 <인 타임> 영문판 포스터.

<인 타임>의 세계관은 <모모>의 그것보다는 살짝 더 체계적이다. 여기서는 아예 현행 화폐가 사라지고, 시간 그 자체가 화폐로 대체된다. 이를 위해 '시스템'이 설립되는데, 모든 인간은 만 25세가 되는 순간 팔에 디지털 눈금이 생기고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 시간이 0초가 되면 심장마비로 사망하며, 노동이나 투자를 통한 경제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인생을 계속 연명해야 한다.

 

스토리는 재산 1-2일을 간당간당하게 유지하며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 부자를 구해주고 그에게 시스템의 비밀을 들은 뒤, 100년을 선물받고 중앙구역으로 옮겨왔으나 당연히 범죄자로 몰려 쫓기다가, 인질로 잡은 부잣집 딸과 사랑에 빠져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뻔한 얘기이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정말 잘 만든 영화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군데군데 허점이 조금씩 있었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이 납치된 후 마음을 여는 과정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급작스럽고, 고작 두 명에게 온 나라가 휘둘리는 과정이 그닥 설득력 있지 않았다는 점 등, 전체적으로 사건 전개의 개연성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상업 영화 특성상 러닝타임은 한정되어 있는데 액션과 러브신, 산파신의 비율을 맞추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도 같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고, 이 영화는 오히려 시사하는 점과 매력 포인트가 많았던 것 같다. 비록 설정이 잘 짜여진 SF라기엔 허점이 많지만, 우선 영화에서의 주요 캐릭터들이 정말 매력적이고 배우 캐스팅도 아주 알맞았다. 특히 내게 와닿았던 것은 리온 형사(킬리언 머피 분)였는데, 빈민촌에서 자수성가해서 시간경제 질서를 지키는 타임키퍼가 되었으나 결국 현재 구조에서는 지금의 시스템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앞잡이가 되는 캐릭터.

 

이렇게 '현재에 순응해버린 과거의 도전자' 캐릭터, 어떻게 보면 '타락한 용사'와 같은 인물에게 나는 이상하게 흥미를 느끼는데, 특히 그 인물이 완전히 악의 수장이 된 것이 아니라 리온 형사처럼 중간 관리자나 실무자로 일하고 있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1984>에서의 오브라이언과도 비슷한 매력 포인트라고 볼 수 있겠다.

 

또 킬리언 머피라는 배우에게도 급작스럽게 빠져버린 것 같은데, 사람이 껌을 씹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영화 내내 껌을 씹고 있는데, 배역에 상당히 어울리는 설정이었다. 비슷하게 빠져버린 사례로는 <옥자>의 제이 역을 맡은 것을 보고 좋아하게 된 폴 다노가 있겠다.

 

오히려 주인공은 너무나 전형적인 캐릭터라서 큰 인상을 주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자산가의 딸로 나오는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언제나처럼 매력적이었고, 특히 이 영화에서는 부잣집의 엄격한 관리에서 벗어나 모험가와의 위험한 밀회를 그리는 과정을 너무 잘 연기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누구나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살 수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현실에 완전히 순응해서 살아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일깨워주는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쉬운데, 특히 현재의 사회라는 틀을 벗어나 그것을 극대화시켜 보여줄 수 있는 SF 작품이 재밌으면서도 직관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 타임>은 충분히 타성에 젖은 우리를 살짝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영화정보

인 타임

(In Time, 2011)

 

1시간 49분(109 min.)

 

감독 앤드루 니콜

 

주연

저스틴 팀버레이크(윌 살라스)

어맨다 사이프리드(실비아 와이스)

킬리언 머피(레이먼드 리온)

알렉스 페티퍼(포티스)

빈센트 카트하이저(필립 와이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