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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세이,레포트

『소네치카』 : 여성, 개인, 시대

by 누에고치 2021. 3. 1.

『소네치카』 : 여성, 개인, 시대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소네치카』,박종소 외 옮김,비채, 2012”를 읽고 쓰는 에세이입니다.

** 본 에세이는 2018년 6월 학과 과제로 제출한 글에 추가적인 수정을 가한 것입니다. 원작자의 허가 없는 무단전재 및 표절을 금합니다.


1. 서론

비채출판사에서 펴낸 『소네치카』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Людмила Улицкая, 1943~)의 작품을 담은 소설집입니다.

  • 『소네치카』

  • 『스페이드의 여왕』

  • 『메데야와 그의 아이들』

세 작품 모두 울리츠카야 특유의 색채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죠. 이 글에서는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파악하고, 각 작품에서 이 특징들이 구현되는 방식을 설명해보겠습니다.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여성, 개인, 시대의 세 키워드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여성이란, 작가인 울리츠카야가 기존의 남성 작가들과 다른 시각으로, 보다 여성에 치중해 작품을 쓰는 경향을 말합니다.

  2. 둘째로 개인이란, 작품 속에 나타난, 시대적 흐름과는 동떨어진 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개인들을 말합니다.

  3. 셋째로 시대란, 이렇게 개인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으로 작중인물들에게 역사적 흐름이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음을 말합니다.

    1. 둘째와 셋째의 키워드는 상호보완적인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함께 다루겠습니다.

2. 여성 중심의 서사

먼저, 여성입니다. 단연 외적으로 부각되는 요소는 주요 인물들의 성별이겠죠. 남성이 주된 역할을 하고 여성은 보조적 역할로 기능했던 기존의 문학작품과는 다르게, 울리츠카야의 작품에서는 여성들이 주 인물로 등장합니다.

 

물론 작가의 성별과 작품 속의 내용이 언제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하여 성별의 구분이 많이 옅어진 현대사회에서도 남녀가 지닌 사회적 경험은 서로 다르죠. 하물며 현대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도 성별에 따라 시각이 적잖이 다른데, 1943년생 여성인 울리츠카야가 겪은 일생은 같은 1943년생 남성의 경험과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남성 중심의 문법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를 다뤘던 기존 작품에선 익숙했던 사회구조와 인간관계가, 여성의 문법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를 다룬 이 작품에서는 새롭고 낯설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소네치카에서

첫 작품인 소네치카에서, 주인공 소네치카는 원래 책 읽기를 좋아하던 독서광이었다. 도서관에 근무하던 소네치카에게 망명 예술가 로베르트가 찾아오게 되고, 로베르트와 함께 이룬 가정에서 벌어지는 풍비박산한 삶 속에서 소네치카는 독서광으로서의 면모를 잠시 접어두고 담담히 부인으로서, 어머니로서 살아간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다가 오랜 무명생활 끝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 예술가 남편과는 다르게, 아내인 소네치카는 본인의 색채를 잃어 가족의 안정과 생계를 책임지는 일반명사 ‘기혼 여성’으로 전락한다. 물론 소네치카와 로베르트 둘의 개인적 특성에서 기인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여성이 꿈을 포기하는 일이 많은 가정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것으로 볼 때, 이는 시대적 배경의 입김이 센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또한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노파 무르가 겪은 일생 또한 여성이 아니었다면 겪기 힘들었을 인생이었을 것이다. 무르는 젊을 적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많은 공산당 간부들과 교제해 호화로운 인생을 살았고, 늙어서는 안나 표도르브나에게 잔소리하며 집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아름다운 외모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남성의 경우와는 다르게 여성의 외모가 사회적인 출세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또한, 상당한 권력을 남성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의 남성중심성도 나타나며, 모두가 평등하다는 소비에트 사회도 결국 외모와 성별, 지위에 따라 받는 처우가 달랐다는 것도 무르의 인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3. 개인과 시대

둘째, 개인과 시대이다. 책에 실린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시대의 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건의 구체적 묘사를 최소화해 역사와는 동떨어진 듯 보이는 개인 일생의 서사이다

소네치카에서

구서경이 말한 것처럼, 『소네치카』에서는 “10월 혁명, 적백내전, 레닌의 사망, 스탈린의 집권과 사망 등 소비에트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소네치카가 소련 당국의 결정 때문에 집을 잃는 장면이나, 무르가 공산당원들과 교제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 개별적 사건들이다. 그러나 고리키, 솔제니친, 자먀찐의 작품에서 공산주의적 사회 흐름을 조금 더 사상적 차원에서 다루고, 나아가 주인공이 크고작은 사회 변혁을 주도하는 장면까지 나오는 데에 비해, 울리츠카야의 작품에서의 공산주의는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적 배경으로 제시될 뿐이다. 박종소는 이를 두고 “때로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때로는 고골과 체홉의 ‘작은 인간’들, 평범한 인간들을 그려내는” 것으로,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의 서사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포스트소비에트 문학의 경향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적 흐름에 직접적인 불만을 가지거나 이를 바꾸려고 하기보단, 감내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상술한 여성적 서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연표 밑에서, 조명되지 않은 채 살아왔다. 남성들이 타국을 정복하고, 철학 사상을 주장하고, 서로를 처형하던 중에 여성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울리츠카야의 작품은 조명되지 않았던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 섬세하게 빛바랜 개인의 역사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에선 이 특성이 더 두드러진다. 전쟁과 권력다툼 같은, 우리가 연표로만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서 고위층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이를 받아들이고 대응했을까. 세계대전을 다룬 프리모 레비의 수필 『휴전』,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전쟁을 겪은 당시의 시각에서 군인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남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와는 다르게, 이 작품에선 회상이라는 틀에서 역사가 제시된다. 친척들과 함께하는 메데야의 노년 생활 속에서 언뜻 제시되는 과거의 필름들은 사건들을 생생히 경험하게 해주진 않지만, 현재의 삶과 번갈아 제시됨으로써 마치 독자가 오랫동안 살아왔고, 노년에 다다라 먼 옛날에 겪은 일을 떠올리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이렇게 잘 몰입되는 구조이면서도 빛바랜 필터를 통과해 읽으면서, 독자는 메데야의 인생에 시대사와 개인사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자연스레 깨칠 수 있고, 가상의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섬세하게 존재하지 않는 개인의 인생을 묘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울리츠카야의 훌륭함을 생각할 수 있다.

4. 요약 및 결론

요약하자면, 소설집 『소네치카』의 세 작품은 역사의 강줄기을 따라 흘러가는 나뭇잎 같은 여성들의 일생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 젠더적 문제, 역사적 괴리, 가족관계를 주제로 한 메세지가 결코 희미하지만은 않게 담고 있다.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하나의 인생을 더 산 것처럼 인식의 범위를 넓히고, 이런 가상의 인생경험으로부터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적 흐름을, 특히 여성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같은 시대를 다른 인물들의 시각에서 다룬 작품들과 함께 읽는다면, 더욱 심도깊이 러시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소네치카』, 박종소 외 옮김, 비채, 2012

학술논문

구서경, “울리츠카야의 중편소설 「소네치카」연구 : ‘영원한 소네치카’의 형상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노어노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15

박종소, “A. 푸슈킨과 Л. 울리츠카야의 동명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의 비교에 관한 소고”, 『러시아연구』, 제23권 제1호(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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