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러시아/에세이,레포트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 알듯말듯한 부조리 문학

by 누에고치 2021. 2. 28.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 : 술 취한 사람들

* 본 에세이는 2018년 6월 학과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원작자의 허가 없는 무단전재 및 표절을 금합니다.

 

** 베네딕트 예로페예프,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 박종소 옮김, 을유문화사, 2010 을 읽고 쓴 에세이입니다.


 

서론

예로페예프의 소설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는 모스크바를 기점으로, 페투슈키를 종점으로 하는 열차에 탑승한 베냐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소비에트 지하출판물 중 가장 널리 퍼진 소설 가운데 하나로, 1989년에 이르러서야 합법적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모두가 술에 취한 채 조리없이 대화하는 부조리문학으로서,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이 되는 소설로 평가되기도 한다. 본 에세이에서는 이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다루고, 소설의 부조리성과 은유, 그리고 작가 예로페예프와 주인공 베냐의 연관성을 다루고자 한다.

 

술에 취한 주인공

베냐는 케이블 설치공으로, 부원들의 개인당 알코올 섭취량을 그린 그래프를 실수로 보고서와 함께 상부에 전송하는 바람에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그는 소설이 시작될 때 이미 술에 취해 있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내뱉는다. 페투슈키행 기차에 올라탄 그는 수많은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주인공이 취한 탓인지, 아니면 만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인지 모두 정상적이진 않은 사람들이고, 베냐는 이들과 취한 채 이야기를 나눈다. 기차를 타고 페투슈키에 도착하는가 싶었지만, 중간에 등장했던 스핑크스의 말처럼 그는 페투슈키에 다다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쫓기며 소설은 끝난다.

 

소설의 부조리성

 줄거리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소설은, 조리있게 말을 늘어놓지 않고 형식을 파괴해버리는 부조리 문학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모두가 술에 취해있는 열차 안에서 독자인 나만 멀쩡한 정신으로 취한 이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부조리성을 두고, 이장욱은 이것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획일적 코드 아래에서 ‘긍정적 주인공의 낙관적 세계관’만을 강조하던 공식문학인 고씨즈다뜨에 반해, 지하문학인 싸미즈다뜨의 몫이었던 ‘틀 밖의 문학, 코드 밖의 문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1] 이장욱의 이 논평은 나로 하여금 솔제니친이나 나보코프 등 망명문학인 따미즈다뜨 작품과는 또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사미즈다뜨 작품, 특히 비슷한 시기인 브레즈네프 시기의 작품을 읽어봐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의미 없는 은유

 또한 이 소설에는 문학, 역사, 종교 등 분야를 불문하고, 수많은 텍스트를 인용하거나 비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문학 텍스트의 경우, 러시아 민족주의를 옹호했던 소비에트 작가 솔로우힌은 민족적인 소재로서 ‘소금에 절인 버섯’을 등장시키는데, 작중에는 솔로우힌이 딴 소금에 절인 버섯에 ‘침을 뱉어 버리자’고 말하는 대사가 나오는 등(p. 90), 모두 어떤 뜻을 표현하기 위해 진지하게 비유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뜻 없이, 말장난의 소재로 쓰거나 조롱하기 위해 가져온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 소설에서는 칸트의 철학 개념도 여러번 등장하는데,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 떠들썩하게 ‘선험적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부분(p. 38)이나, 방귀를 끼는 것이 ‘현상적이 아니라 본체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p. 45)처럼, 칸트의 철학개념을 진지하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의미없는 감탄사로 전락시키거나, 본 의미를 살리더라도 말장난의 일부로 집어넣음으로서 그저 잡담의 일부로 생각되게 만든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이러한 부조리성과 은유로 보았을 때, 시대적으로 꽤 떨어져 창작된 소설임에도 빅토르 펠레빈의 <<P세대>>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P세대>> 역시 서아시아 고대 신화와 당대 러시아의 현실에의 비유를 마약으로 점철된 분위기 속에서 알듯말듯하게 서술한다. 이것으로 보아,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가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인 작품’[2]이라는 역자의 말이 어느정도 이해된다.

 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서, 기존의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형식을 파괴하는 전위성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내용을 알기 어렵게 하는 장치로도 작용한다. 물론 이 소설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데에는 번역을  통하는 과정에서의 의미손실과 당시 소련사회에 관한 직간접적 경험이 부재한 탓이기도 하나, 이 소설만의 형식 파괴가 더 큰 요인이었다.

 

베네딕트와 베냐

 역자 박종소가 주장하듯[3], 이 작품에서 작가 베네딕트 예로페예프와 작품 속 주인공인 베냐는 분리하고 바라볼 수 없다. 예로페예프는 국적이 없는 상태로 소련 내를 떠돌았고, 작중 베냐의 직업인 케이블공을 포함해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다. 예로페예프의 방랑자 같은 인생은 이 작품에서 크렘린이나 페투슈키에 다다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거리와 기차를 방황하는 베냐로 표현된다. 또한, 소비에트 사회 속에서 그가 추구하는 어떤 이상에 다다르지 못하고 떠돌던 모습은, 작품이 한동안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못하고 지하 출판물로 남아있으며 단지 암울한 현실을 조롱하고 풍자할 뿐이었던 것과도 비슷하다.

 

요약과 첨언

요약하자면, 알코올 중독자 베냐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어느정도 자전적인 부조리 문학이다. 소설은 공식문학의 틀에 반기를 들고, 또한 이후의 포스트소비에트,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데에서 큰 가치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부조리성과 무분별한 인용/비유는 소설에 몰입하는 것을 크게 방해한다. 특히, 한국인을 비롯하여, 소비에트 연방 아래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설명이 없으면 그저 몽환적인 문학의 하나로 읽힐 우려 또한 있다. 그렇기에 을유문화사의 2010년 판본은 역자인 박종소의 충실한 미주 작업과 해설을 붙여, 이러한 위험을 줄이고자 한 듯하고, 실제로 필자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주석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판본이었다는 점에서, 작품 외적으로도 큰 교훈을 얻은 듯하다.

 

참고문헌

단행본

베네딕트 예로페예프,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 박종소 옮김, 2010, 을유문화사.

 

학술논문

이장욱,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창작과 비평>> 제 39호(2011), 창비.

 


[1] 이장욱,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창작과 비평>> 제 39호(2011), 창비, 423쪽.

[2] 박종소, 2010, 베네딕트 예로페예프 작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의 역자 해설, 305쪽, 을유문화사.

[3] 박종소, Ibid, 292쪽.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