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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세이,레포트

『고골 단편집』: 몽환적인 뻬쩨르부르크에서의 현실적인 이야기들

by 누에고치 2021. 3. 24.

고골 몽환적인 뻬쩨르부르크에서의 현실적인 이야기들

『고골 단편집』을 읽고 쓰는 에세이

일러두기

* 『코』와 『외투』는 펭귄북스의 번역본[1]을 참조하였습니다. 『네프스끼 거리』 는 민음사의 번역본[2]을 참조하였습니다.

* 본 레포트는 학과 과제로 제출된 것으로, 작가의 별도 허락이 없는 한 복제 및 무단 전재를 엄격히 금합니다.

 

1896년의 넵스키 거리.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Znamenka.jpg

 

고골의 작은 사람들

소시민 문학. 현대 한국어로 표현할 때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과 가장 비슷한 장르를 표현하는 단어일 것입니다.

 

『코』, 『외투』, 『네프스끼 거리』 세 작품의 주인공 이발사, 9등 정서관, 그리고 화가는 결코 『안나 까레니나』의 주인공인 안나와 레빈, 키티처럼 상류사회의 삶을 경험할 일이 없고, 훨씬 빈곤하고 보잘것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셋은 모두 반복적이고 소소한 삶을 살아갑니다. 언제나 똑같이 손님의 머리와 수염을 이발해주는 『코』의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와 8등관 꼬발료프, 언제나 똑같이 문서를 정서하는 『외투』의 9등 문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 그리고 이 둘보다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어쨌든 뻬쩨르부르그의 상황 속에서 단조롭고 채도낮은 일상을 그려내는 『네프스끼 거리』의 화가 삐스까료프까지, 주목받지 못할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오늘의 주인공들입니다.

 

‘작은 사람’으로 불리는 이러한 인간군상들은, 장군의 뒤통수에 재채기를 했다가 이에 강박을 가진 나머지 죽어버리는 관리를 그린 『관리의 죽음』에 나오는 자처럼 매우 나약하고 보잘것없죠. 몇 안되는 갑 아래에 살아가는 수많은 을들의 모습은, 완전한 공산사회가 실현되지 않은 모든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기계사회가 인간을 조금씩 평등하게 만들어주고는 있지만, 결국 우리는 대부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하지 못한 채 생을 마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이 세 사람이 대표하는 인간군상은 시대를 넘어 어느 정도의 동질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은 극적인 신분사회였던 당시와 달리 재산과 학식에 의해 유동적으로 변하지만, 대신 그렇게 변한 신분 간의 차이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반-신분사회에서 우리는 윗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 힘들어하며, 고골과 같은 고전 작품들은 분명히 그때도, 지금도 비슷한 교훈을 시사해줍니다.

 

어느날 없어져버린 작은 사람코발료프의 코

이들은 또한,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수준에 이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첫번째 작품인 『코』에서는 8등관 코발료프의 코가 어느날 갑자기 이발사 야꼬블레비치의 아침빵 속에 나타나며, 또 그것은 5등관이 되어 도시를 돌아다닙니다.

 

8등관이라는 이름이 왠지 하찮아보여 소령이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코발료프에게, 자신의 코 따위가 5등관 행세를 하며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큰 문제였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코가 없어져서 본인은 각종 파티에도 참여하지 못하는데, 그 코는 멀쩡히 나다니니 말이죠. 김민경은 코발료프가 이렇게 추구했던 것을 '권위와 위엄'이라고 칭합니다.[3] 없어진 코는, 그가 가지고 있던 얕은 권위와 위엄마저 앗아가버린 것입니다.

 

또, 그렇게 앗아진 권위와 위엄은 독립체로 걸어다닙니다. 이는 결국 5등관으로 대표되는 권력과 ’ 개념이 결국 실체없는 허상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코발료프처럼 5등관과 3등관을 우러러보지만, 결국 그들도 시스템에 의해 그 자리로 올라가 기능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허상과 같은 그들은 어떻게 보면, 코발료프의 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욕망으로의 전환점: 아까끼의 외투

『외투』에서는 이만큼 기이하진 않지만, 외투가 다 닳아버리는 사건이 생깁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외투는 추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특히 뻬쩨르부르크의 겨울은 서울의 겨울만큼 춥고, 제대로 된 외투 없이 버텨내기란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종이를 정서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욕심도 가지지 않던 아까끼에게 이러한 보호장비의 고장은 대사건입니다. 월급을 모으고 모아야 겨우 살 수 있는 돈이지만 추운 날씨에 어쩔 수 없이 외투를 구매할 것을 결정하게 되고, 그에겐 어떤 목표와 욕망이 생깁니다.

 

우리 모두에겐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가 주어집니다. 이러한 질서와 다소 동떨어져서 살던 아까끼에게도, 날씨라는 이름으로 강제적인 질서가 내려집니다.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질서에 아까끼는 외투를 맞추게 되구요. 자본주의 사회 밑에서, 모든 구매는 욕구에 기반한 행위고, 비싼 물품은 특히 욕구를 더 불러일으킵니다. 그가 주문한 외투는 비록 최고급 명품은 아니었지만, 꽤 고가라는 점에서 그로 하여금 돈을 모아서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외투는, 추위를 이기는 기능적 의미에서 발전해 삶의 방향을 전환해주고,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전환점으로서의 의미도 가진 것입니다. 결국 일을 완료하여 이런 목표를 이루고 뿌듯한 채 출근한 아까끼를 모두들 맞아줬고, 그는 내심 흐뭇해합니다. 그러나 도둑에게 옷을 뺏긴 후 그는 이렇게 고심했던 목표를 잃어버린다.

 

이 외투는 현대사회의 휴대전화와 다소 유사하게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전화기가 없으면 본인이 국민인 것을 인증조차 못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질 좋은 전화기를 사려고 하고, 몇 달치 봉급을 조금씩 절약해 통신비와 기계값을 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얻은 전화기를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결국 아까끼는, 비극적이게도, 죽어버리고 맙니다.

 

삐스가료프와 뻬쩨르부르크의 지독한 허위

세 작품 모두에서 배경은 뻬쩨르부르그이며, 고골의 작품에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것은 분명 그 배경인 뻬쩨르부르그와의 연관을 가집니다. 노동자의 뼈 위에 세워진 도시인 뻬쩨르부르그는 고골의 작품에서 굉장히 안개끼고 음습한 도시로 그려집니다.

 

한편으로, 『네프스키 대로』의 초반부에 설명되듯 중심부의 모습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형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더러우면서도 겉은 화려한 도시 속에서, 화가 삐스가료프는 길거리의 노파를 불러 그 모습을 담으려 하는 등, 뭔가 진실되고 이상적인 것을 쫓으려 하는 드문 인물이고, 드문 직업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신다영의 말처럼, “이 인물이 밤중의 네프스키 거리에 만연한 허위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4] 성스러운 외모에 끌려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따라들어간 곳은, 음탕한 매춘의 장이었죠. 이러한 괴리에 삐스가료프는 괴로워하다가, 현실의 어두움과는 대비되는 꿈속의 아름다운 뻬쪠르부르그를 헤멥니다.

 

어떤 사회이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상을 삶 속에서 계속 관철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상이 있어야 사회가 원동력을 갖기에, 우리는 이중적인 사회에 의해 현실과는 다른 이상을 부여받습니다. 그것이 가장 만연했던 것이 당시의 뻬쩨르부르크였고, 삐로고프는 도시가 제공하는 허위에 속아넘어간 것입니다.

 

계속 꿈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던 그는 결국 자살하게 됩니다.

 

요약 및 마무리

고골의 이러한 이미지는 후대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칩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경우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그만큼 많은 작품에 고골의 영향이 묻어있습니다. 작고 힘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은 분명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호소력이 있으며,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고골은 그러면서도, 신화적인 요소나 초현실적인 요소를 섞어넣어 정치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풍자를 통해 내용을 재밌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었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작가입니다. 잃어버린 코와 외투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허상뿐인 성녀 비얀까를 찾아 올라가는 과정처럼 우리도 헛된 인생을 찾아가는 건 아닌지 항상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단행본

니콜라이 고골, 이기주 옮김, 『고골 단편집』, 펭귄북스(2015).

니콜라이 고골, 조주관 옮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민음사(2002).

 

인터넷 문헌

김민경, ‘[러시아문학] , 환상보다 더 환상적인 현실’, 남산강학원, 2013-12-16, kungfus.net/bbs/board.php?bo_table=0802&wr_id=201 (2021.03.24 확인).

신다영, ‘[러시아문학] 기만과 허위 그리고 절망’, 남산강학원, 2013-10-31, kungfus.net/bbs/board.php?bo_table=0802&wr_id=177 (2021.03.24 확인).

 


[1] 니콜라이 고골, 이기주 옮김, 『고골 단편집』, 펭귄북스(2015).

[2] 니콜라이 고골, 조주관 옮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민음사(2002), pp. 227-282.

[3] 김민경, ‘[러시아문학] , 환상보다 더 환상적인 현실’, 남산강학원, 2013-12-16, kungfus.net/bbs/board.php?bo_table=0802&wr_id=201 (2021.03.24 확인).

[4] 신다영, ‘[러시아문학] 기만과 허위 그리고 절망’, 남산강학원, 2013-10-31, kungfus.net/bbs/board.php?bo_table=0802&wr_id=177(2021.03.24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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