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는 모레까지 마감인 인문100년장학금 신청서류를 사흘째 작성 중입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제공하는 인문계열 장학금 중 가장 신청하기 까다로우면서도 파격적인 지원액의 장학금이죠. (전액장학 + 생활비지원) 요며칠 블로그에 자주 들어오지 못한 이유기도 하고요.
이 장학금은 1학년생을 대상으로 4년 장학생을, 3학년생을 대상으로 2년 장학생을 뽑는 형식입니다. 1학년때 지원했던 저는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지원폭이 넓은 3학년 전형으로 이번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직접 종이로 신청하는 것으로 끝이었던 작년의 전형과는 살짝 바뀌었더라구요. 사전심사를 통과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사실 소득분위랑 성적 부분의 점수가 낮을 거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제가 이 장학금을 신청하는 것은 이 장학금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다니면서 생각보다 나를 포장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수시전형을 통과한 학생들, 자기소개서를 잘 써서 장학금을 탄 사람들이 정말 자신이 한 얼마 안 되는 일을 잘 포장해서, 즉 사기를 쳤기 때문에 성공했을까요?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이 사람들은 짧게는 한 주, 길게는 몇 달까지도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자신이 이때까지 쌓아온 경력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고, 본인이 위치한 곳이 어디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아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렇지만 1학년 초에 신청한 신청서를 보고 있으니 사실은 부끄럽습니다. 당시 '이 장학금에 선발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습니다!'라고 써놓았던 것 중 대부분은 못 이뤘으니까요. 수시전형을 합격한 이후 '나만큼 인문학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 학교에 있을까?'하며 지원했던 장학금에 탈락한 이후로부터 입학초의 들떴던 마음이 급격하게 가라앉았고, 정신체력적인 문제가 지속되어 2년의 기간동안 엄청나게 성장하진 못했다고 생각하니까요.
한편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번 서류를 준비하면서 18년 초에 쓴 지원서, 그리고 18년 말에 썼던 레포트들을 읽어보고 있으니 현재의 글솜씨보다 확실히 뒤떨어지는 느낌이 났으니까요. 그리고 18년 7월에 제가 러시아말을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면, 지금 제가 구사하는 러시아어는 훨씬 성장한 것이니까요. 비록 원했던 것만큼은 자라지 못했더라도, 저는 단지 나이를 헛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라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도 정체되어있다는 생각에, 더 주눅들어서 못 움직이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괜찮아요. 비록 느리게 걸어간다고 해도, 우리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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