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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21-2 / 토르플 2급 말하기-듣기 시험 후기

by 누에고치 2020. 3. 21.

2020. 03. 19 (목)

바이러스 위기 때문인지, 원래 이런 건지 19일엔 응시자가 나 하나였다. 9만 5천원으로 독대서비스를 누려보세요! 이날 담당자+면접위원 2명+기술자까지 4명이 나 하나를 위해 일한 셈이다. 채점시간과 등록과정까지 생각하면, 가격이 오히려 싼 게 아닐까? 목요일은 구술 테스트로, 영역은 듣기, 말하기였다.

 

Аудирование[아우지라바니예] 듣기

러시아어 단어가 길면 인쇄된 것에 놀라야 정상이겠지만, 사실 읽기는 생각보다 수월하고 듣기가 어렵다. 이유는 간단한데, 같은 시간에 훨씬 긴 단어가 발음되기 때문에, 영어에 비해 기본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 수능 영어듣기를 하나라도 틀리면 바보라고 취급되는 곳에서 살아왔던 내가 쇼크를 먹은 것은 당연하다.

 

구술에 약한 나로서는 토르플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다. 나름 외국인을 배려해서 천천히 말하는 것도 못 알아듣는 나로서는, 어떻게 실력을 늘려야 할지 막막하다. 참고로 2분, 작성시간을 5분 준다. 수능영어에 최적화된 한국 대학생에겐 굉장히 불합리한 조항이다. 이미 듣기가 다 끝난 다음에 5분이나 머릿속을 재구성해봤자 뭐가 달라지겠는가? 분명 이 구조를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텐데, 아직은 감이 안 잡힌다.

 

Говорение [가바례니예] 말하기

짧게 쉬고 계속 이어간다. 뭐라도 먹을 걸 가져왔으면 좋겠는데, 가방엔 어제 넣어놓고 까먹은 설탕 든 홍차밖에 없었다. 아쉬운대로 그거라도 마셨다. 항상 이런 걸 마시면 별로 장이 좋아지진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심하게 아픈 적은 잘 없다. 나는 전체적인 건강에 비해서는 소화기관이 튼튼해서 다행이다.

 

아무튼 2명의 면접관이 앞에 앉아서 '준비된 질문'(아우지로바니예의 끝부분에 13분을 준다)과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섞어서 던진다. 나는 시험을 던졌다. 모든 문항에 현문우답으로 대답한 것 같고, 심지어 질문 하나는 못 알아들어서 뭐라도 생각해보려다가, "그러면 다음 질문을 드릴게요."라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항상 나에게는 구술이 어렵다. 한국어로도 말귀가 느리고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한테, 러시아어로 하라는 건 대체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아, 이 사람은 말주변이 없구나'하고넘어가는데, 러시아에서는 '아, 아직 러시아어를 배운지 1달쯤 됐겠구나'라고 취급받는게 조금 슬프다. 내 진짜 실력은 딱 2년치 정도는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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