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강검진
1.1. 들어가며
거주등록증(레기스뜨라찌야)가 나오자마자 건강검진을 하러 갔습니다. 무슨 탈출게임마냥 학과에서 입학명령서가 있어야 기숙사 계약서를 발급받을 수 있고, 계약서를 발급받아야 거주등록을 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근데 나중에 보니까 거주등록증 없이도 그냥 주소 적으면 건강검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괜히 기다렸네요.)
그러나 여기가 예약 없이 건강검진을 받아주는 곳이다보니, 총 세 번을 가서야 등록을 할 수 있었습니다.
— 거주등록증 받자마자 오후에 갔는데 '이미 마감된지 오래고 주말에 다시 오라'
— 주말에 오픈 10분 후에 갔는데 '오늘은 이미 다 찼다'
— 평일 새벽 일찍 세 번째 시도. 성공.

1.2. 세 번째 방문만에 성공한 접수
두 번이나 건강검진에 실패했으므로 칼을 갈고 새벽 5시 반에 일어났습니다. 빵 한 줌 집어먹고 씻고 6시 20분쯤 나왔습니다. 위도가 높다보니 10월 말만 되어도 8시 전까지는 어둑어둑합니다. 병원에는 대충 7시 20분쯤 도착했고, 7시 30분에 바깥쪽 게이트가 열렸고, 7시 50분쯤 병원 출입구가 열렸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육상선수마냥 신발에 비닐 끼우고, 엘리베이터로 접수처까지 올라갔는데도 저보다 더 빠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중국인이었고 흑인이 딱 한 명 보였습니다.
유료서비스부서 창구는 그야말로 혼돈인데, 항상 줄이 가득 차있고 건강검진 등록하려는 사람, 결과지 받으려는 사람, 건강검진 외의 서비스 받으려는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보니까 10일 전에 검사한 사람도 결과를 못 받고 돌아갔는데, 즉 결과가 나오는데 10일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라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접수처가 워낙 바쁘다보니 전화를 전혀 받지 않아서, 결과가 나왔는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직접 방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준비해온 서류를 냈고 아무 문제 없이 접수가 됐습니다. 병원에서 복사를 안 해주므로 직접 복사를 해오라고 합니다. 접수한 뒤 약 40분 기다리니 한 명씩 결제하라고 불렀고, 저는 4번째였습니다. 8시 지나서 여유롭게 도착한 사람들도 접수하는 걸 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빨리 갈 필요는 없었긴 한데, 아무튼 빨리 온 덕에 거의 기다리지 않고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1.3. 세 가지 검사: 내과, 방사선, 혈액 및 소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내과 검진입니다. 당연하게도(?) 중국어로 된 질문지를 받았습니다. 한국인이라고 하자 미안하다며 상당히 아기같은 글씨로 쓴 한국어 질문 리스트를 보여주셨습니다. '수두를 앓은 적이 있습니까? 어릴적 백신을 맞았습니까?' 등 질문에 '네/아니오'으로만 대답하면 됩니다.
그런 다음 엑스레이를 찍었습니다. 러시아는 가운 같은 것 없이 상의를 아무것도 안 입고 찍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방사선사가 여성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복도 의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부르면 들어가는 방식이었는데, 앞에 있던 중국인이 말을 잘못 알아듣고 들어가려고 하자 방사선사가 좀 단호하게 '부르면 들어오시라고요!!'라고 말해는데, 중국인은 저주의 손짓을 하였다는 일화가... 기다리면서 얘기를 해보니 학부생이라 러시아어를 잘 못 하는데다가, 러시아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피를 뽑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뽀로로밴드 붙여주는 게 아니라 팔 전체를 붕대로 감싸줍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와서 그런지 제가 좀 어지러워하자 후각검사 할 때 쓰는 암모니아로 정신 차리게 한 뒤, 앉아있으라며 물도 한 잔 갖다주셨어요.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스윗한 러시아의 중년 여성들... 마지막으로 소변검사까지 하면 그냥 집에 가면 됩니다.
2. 지문등록
2.1. 건강검진 결과 수령
앞서 언급한대로 10일이 지났는데도 결과를 못 받은 사람이 있길래 11일차에 갔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이미 며칠 전에 결과가 나온 듯 보였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서류 더미에서 한참 찾다가 '여기는 며칠 이후 결과만 있다'라고 하자 창고 같은 데에 가서 찾아오더라고요.
이로써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곳에 위치한 병원에 총 4회를 방문해서 건강검진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시간만 8시간, 총 기간으로는 2주가 소요되었습니다.
2.2. 온라인 예약 후 МВД에서 지문등록 — 실패
Госуслуги(≒정부24) 라는 앱을 통해서 МВД(내무부, ≒주민센터)에 지문 등록을 예약할 수 있었는데요. 건강검진 결과를 수령한 당일에 잠깐 학교 근처로 와서 필요한 것 사고 점심 먹고 테이블에서 공부 조금 하다가 내무부 지점으로 갔습니다. 1층 안내창구에 물어봤습니다. 예약한 사람은 번호표 뽑지 말고 예약된 시간에 바로 15번 방에 들어가면 된다고 안내를 받았습니다.
2층에 올라갔더니 다소 휑하고 아무도 없어서 뭔가 잘못 온 게 아닐까 싶었는데요. 15번 방(이민담당)에 들어갔더니 '옷 거기 놓지 말고 이 의자에 놓으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스럽게도 예약 시간 지났는데도 자기 통화를 1-2분간 하다가, 통화를 끝내고 '듣고 있습니다. 어떤 것 때문에 오셨어요?' 물어봅니다. '지문등록 하려고요' 대답했더니, 본인들은 지문 등록 기계가 없어서 못 한다며, 당연히 기계가 있었다면 해드렸을 텐데,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다소 친절함을 느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 라고 질문하신다면, 러시아에 살아보셔야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뽕을 뽑자는 마음으로 '모스크바의 건강'이라는 코너에 있는 기계들로 키/몸무게, 혈압을 재고 인바디까지 야무지게 하고 나왔습니다. 어디 가서 돈 주고 해야 되는 건데, 공짜로 하고 오니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근데 인바디가 대한민국 회사라고 하네요? 갑자기 국뽕이 솟아오릅니다.
나오는 길에 있는 큰 쇼핑센터에서 안경이 틀어진 것 같아서 물어봤습니다. 티타늄이라서 쪼일 수가 없고, 내려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합니다. 한국이었으면 어떻게든 교정을 해줬을 것 같은데, 역시 안경은 한국에서 해가는 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2.3. 다기능이민센터(ММЦ) 방문
사실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주민센터 몇 군데에서 등록을 더 시도해봤을 것 같은데요, 저는 다소 빠르게 완료해야 했기에 최후의 보루인,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다기능이민센터, ММЦ를 방문했습니다. 모스크바의 ММЦ는 본점이 사하로보라는, 다소 외곽에 떨어져 있는 곳에 있고 도심 분점으로 파벨레츠카야 역 근처에 하나가 있습니다. 아래는 타임라인입니다.
8:40 — 도착, 줄서기 | 먼저 끝낸 친구로부터 도심에 있는 곳을 추천받아서 아침 8시 반쯤에 도착했는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여기도 오전 안에 빠르게 하려면 아침 7시 반 전후로는 도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8:50 — 입장 시작 | 그러나 저는 건물 외벽을 넘어서 줄을 서 있었기에,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데까지만 30분이 걸렸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대충 짐 검사를 받고, 책상 하나 있는 간이 서류검사대 같은 곳에서 직원 두 명이 모든 서류를 갖추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필요한 서류는 다음 5가지입니다.
- 건강검진 결과지(총 3장), 거주등록증, 여권과 비자, 출입국카드, 학생증(할인용)
9:45 — 의자에 앉음, 무한 대기 | 도착한지 약 한 시간만에 의자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기다릴지를 정해주는 게 순전히 안내원 재량이라서, 제 앞에 들어간 분들은 복도에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눈치있게 자리 비면 가서 앉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12:45 — 번호 불림, 서류처리 | 4시간의 대기 끝에 저의 번호가 찾아왔습니다. 오전 안에 끝내셔야 하는 분들은 저보다 적어도 한 시간은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창구에 앉으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요, 서류를 스캔해가고, 시키는 곳에 서명하고, 1600루블을 내면 됩니다.
13:25 — 지문등록, 사진촬영 |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서류 5종을 처리하는 데에 40분이 걸립니다. 창구에 따라 본인 창구에서 바로 지문/사진이 되는 경우가 있고 창구에서는 서류처리만 해주고 지문/사진은 다른 창구에서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걸려서, 다른 창구에서 지문등록과 사진촬영을 마쳤습니다. 별 것 없습니다. 민증 만들 때처럼 잉크를 발라야 하는 것도 아니고, 유리에 대고 하면 됩니다.
13:30 — 끝 | 기다린 시간이 무색하게도 정작 지문과 사진은 5분도 안 되어서 끝납니다. 너무 배고파서, 파벨츠카야 역 근처에 있는 버거킹 세트 하나 먹고 귀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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