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14 (토)
로미오와 줄리엣 (1/3)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작곡
올레크 비노그라도프 안무
프로코피예프 작곡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흔히 "기사들의 춤"(또는 "기사의 무도") 부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의 찬란한 유산이 또다른 걸작을 낳았다.* 발레곡은 그 특성상 1-2시간 정도 되므로, 전부 연주하기엔 너무 길다. 그래서 모음곡으로 간추린 버전을 내고는 하는데, 총 세 개의 버전이 있고 가장 유명한 건 No. 2(Op.62ter). 당연히 I. "기사들의 춤"이 가장 유명하고, IV. Dance 또한 흥이 나고 듣기 즐거워 개인적으로 익숙한 노래였다.
*사실, 옛날 작곡가들도 A곡에 쓰려던 게 취소되면 B곡에 붙이는 것도 흔해서 확신할 순 없다.
노보시비르스크오페라발레극장(NOVAT)에 공연을 보러 가면, 미처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는 그 시설에 압도된다. 모스크바의 발쇼이 극장보다 큰, 전러시아 최대의 오페라 극장이니 그럴 만도 하다. 오늘은 극장막까지 준비되어있어서 더욱 그랬다. 보통 극장막은 검붉은 단색에 스크린 프로젝터로 그때그때 적당한 문양을 쏴주는데, 이번 공연에는 로미오의 가문과 줄리엣의 가문 문장을 형상화한 거대한 극장막이 준비되어 있었다.
NOVAT은 4개 공연을 함께 구매하면 20%를 할인해준다. 그래서 저번 달 초 예매할 때 다양한 자리에 앉아보고 싶어 3층, 2층, 1층을 고르게 예매했었다. 이번 좌석은 5열 맨 왼쪽이었는데, 오늘 감상해보니 그닥 좋지 않은 듯하다. 오케스트라 소리는 편중되어 들리고, 무대의 25%쯤은 왼쪽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예상치 않게 좋은(?) 점은 오른쪽 뒷무대가 25%정도 보인다는 것이지만.
공연 시작부터 거대한 문 구조물로 깊은 인상을 주는 <로미오와 줄리엣>. 중세 시대의 배경과 발레의 조합은, 또 내겐 신기한 조합으로 다가왔다. 고대 로마를 다뤘던 <스파르타쿠스>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스파르타쿠스에서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맨몸이 아니라 도구, 특히 칼을 사용하는 안무는 아직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은 스파르타쿠스같은 현대발레가 아니라 정통 안무에 가까워서, 훨씬 시각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2020/02/28 - [문화생활] #10 / 스파르타쿠스 (하차투리안)
"기사의 무도" 본 곡이 등장하기 전에, 프로코피예프는 해당 곡의 메인 멜로디를 미리 등장시킴으로서 우리에게 복선을 깐다. 나는 특정한 멜로디를 지루하지 않게 변주시켜서 곡 전체에 까는 능력을 작곡가의 가장 큰 평가척도 중 하나로 보는데, 프로코피예프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것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신데렐라>를 볼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점이다. 옆에서 칭얼대던 아가 때문이었나.
2020/02/14 - [러시아 문화생활] #04 / 발레 "신데렐라" 감상후기 (프로코피예프,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발레극장)
1막을 감상하다 보면 마침내, 그 유명한 "기사들의 춤"이(Монтекки и Капулетти) 등장한다. 줄거리 상으론 가면무도회가 열려서 곳곳에서 도착한 손님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다. 무대 가득 꽉 찬 무도회 참가자들, 그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의복과 가문 문장, 기하학적인 춤, 선서하듯이 올렸다 내리는 손, 그리고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울리는 금관과 함께하는 짙은 곡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음악적인 특색으로는, A-A-A-ABCDEFE- 로 응답의 멜로디를 부는 금관(아마 트롬본)이 음원에서 듣던 것과는 다르게, 다소 짧은 스타카토-메조스타카토 정도로 부는 것이 인상깊었다. 이 메인 멜로디는 계속 변주되어 이어진다. 또, 바순- 오보에 - 스트링에게 순차적으로 멜로디를 맡기는 것도 색다르고 인상깊은 구성이었다.
발레에 대해선 식견이 깊지 않아 큰 코멘트는 못하겠다. 성별로 나누는 것을 꺼리는 편임에도, 발레리나의 정통 발레안무는 아득할 정도로 아름다운데, 발레리노는 그렇게까지의 느낌이 전해오지 않는다. 이것이 발레 자체의 섬세한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안무가가 발레리노의 포텐셜을 살리지 못한 것인지, 또는 NOVAT의 발레리노의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백조의 호수"를 보러 갔을때, 룸메가 '근데 남주는 좀 못하는 것 같지 않냐'라고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아무쪼록, 줄리엣의 춤은 극 내내 마치 팔랑거리는 나비 같다.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정통 발레엔 항상 특유의 손동작이 있는 것 같다. [ o7 ]과 같은 모양인데, 이 자세로 발레걸음을 걷는 무용수들을 보면, 발레리노든 리나든, 볼 때마다 정말 아름다운 예술장르를 내가 두 눈으로 보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그리고, 발레를 보다보면 모든 게 현실과 같을 수 없다보니 가끔 재밌는 부분이 있는데, 맨 왼쪽 자리에서 보니 앞으로 가려져야 할 것들이 다 보여서 오늘따라 더욱 그랬다. 왕자들이 입어보라고 들고 오는 옷걸이를 하인이 들고 오는데, 옷보다 하인이 더 잘 보인다든가, 움직이는 거대한 무대장치를 미는 검은 옷의 장정들이 보인다든가, 하는 등.
아쉽게도, 1막에서는 기사의 무도 외의 곡은 너무나 생소했다. 이번에는 음원을 여러 번 듣고 갔는데도! 진짜 제대로 들으려면 아예 아는 곡을 보러 가야 가능한 것 같다. 모르는 곡을 제대로 보려면, BGM으로 반복해서 듣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안하면서, 해당 음원을 '감상'해야 되겠다.
이후로도 '무도회.' 'F G A B... 꿈같음'이라고 써놓았는데, 1막의 마지막 부분은 거의 졸아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항상 아카뎀에서 시내까지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정작 무대에 들어가서는 1부 중간쯤이나 뒷부분을 졸아서 놓치는 일이 흔하다.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2-3막의 내용은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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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Apple Music, "London Symphony Orchestra & Valery Gergiev의 Prokofiev: Romeo & Juliet, Op. 64"
Youtube, "Prokófiev - "Romeo and Juliet" Suite No. 2, Op. 64c | Nobel Prize Concert 2009"
НОВАТ, Балет Ромео и Джульетта 원문설명 참고함. 또한, novat.nsk.ru로 인용된 사진은 모두 해당 출처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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