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누에입니다.
오늘은 (어제는!) 시내로 나가서 프로코피예프 작곡인 발레작품, "신데렐라"를 보고 왔어요. 사실, (엄청 어릴때를 제외하면) 처음 보는 발레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오늘의 감상후기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을 것 같아요. '첫 발레 감상'이라는 태그가 붙으니까요.
자리는 제일 위, First Circle(Первый ярус)였어요! 제일 싼 자리 중 하나지만, 오히려 음악도 잘 들렸어요. 물론 무대랑은 꽤 멀어서 자세한 무대 속 인물들의 동작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무대 동선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Центральная ложа가 무대 전체 조망엔 가장 좋고, партер 0열이 상세 동작에 집중하는데 더 좋겠지만, 우리는 빈털털이니까요!
통근열차 일렉뜨리치까를 타고 가보았습니다. 저번에 급행을 타서 아랫동네 베르스크까지 갔던 일이 있어서, 이번엔 저희 대학 옆인 Обское море에 서는 기차를 РЖД(RZD, 러시아철도) 앱으로 반값인 학생가 29루블로 예매하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법적으로 대학 학부생인 студент은 아니라서 학생증명서 студенческий билет을 제시할 수 없었고, ISIC카드나 출입증은 안된다고 해서, 미지불금 29루블 + 차내발급비용(사실상 벌금) 150루블을 내야 했습니다. 이런. 통근열차랑 버스, 트램 등 교통수단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죠! 아래의 글도 있습니다!
2020/02/14 - [번역] #01 / RZD 통근열차(일렉트리치카) 추가적인 서비스에 대한 비용
놀랐던 건 가격상 오디오를 틀고 발레만 직접 공연하는 건줄 알았는데, 무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직접 연주하던 것이었습니다... 400루블, 8천원에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단 말이죠. 심히 놀랐습니다. 이런 경제구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더 많은 공연을 예매해야겠습니다.
사실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랬듯 딱히 깊은 평가를 할 수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러시아 음악을 (갑작스레) 많이 들으면서, 이제 '프로코피예프적'인 게 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화성에 아름답고 웅장한 진행은 차이코프스키, 조금 화성이 전통적이지 않지만 진행이 역시 웅장한 곡은 프로코피예프, 역시 화성 진행이 비전통적이고 가끔씩 곡이 뚝 끊기는 느낌은 쇼스타코비치, 괴상한 음악은 쇼스타코비치,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두시간 반 공연인데, 인터미션을 두 번이나 줍니다. (25분쯤 되는 듯) 7시에 한번, 8시에 한번, 9시에 한번 시작해서 9시 반쯤 끝나는 공연입니다. 신데렐라가 마차로 왕궁으로 떠나는 장면까지 끊고, 신데렐라가 왕궁을 급히 떠나는 장면까지, 그리고 마침내 수소문 끝에 신데렐라를 찾아 행복하게 재회하는 이야기까지 세 번에 걸쳐 들었습니다. 사실, 벌금 후유증으로 기차에서 거의 못 잔 탓인지 1부는 거의 졸았습니다.
신데렐라라서 그런지, 어린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옆에 있던 애기가 재미없다고 칭얼대다가 2부부터는 가만히 있더군요. 그렇죠, 발레 신데렐라가 유튜브보다 재밌을 리가 없습니다.
극장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외관도 아름답고, 내부도 정말 19세기 궁정홀같은 느낌입니다. 현대적이지 않고 정말 정통적인 디자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홀은 못 봤습니다. 극장 안내원들은 특유의 옷을 입고 서 있는데, 특히 몇몇 여자 안내원들은 프로그램북을 들고 동상처럼 서 있습니다. 얼마인지는 모르겠네요. 인터미션이나 공연 전 관객을 겨냥해서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파는데, 술을 보관하려고 얼음통에 담가놓는 모습이나 관객들이 흰 천을 덮은 테이블에 기대서 결혼식장에서나 보던 것처럼 다과를 맛보는 모습도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상을 여럿 찍어왔는데,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kimovfilm으로 편집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든 고급스런 모습들이 40만원도 아니고, 8천원짜리 표로 입장이 가능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 발레도 너무 훌륭했습니다. 바로 러시아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입니다. 추가적인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곡 자체의 후기는 없고 극장 다녀온 후기에 가깝네요. 앞으로 다양한 좌석, 다양한 공연을 예매해놨으니 극장 자체에 대한 감탄이 적어질 것이고, 비로소 작품에 집중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후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누추한 후기를 읽어주심에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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