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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문화생활

[러시아 문화생활] #02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쇼스타코비치 교향곡 3번 감상후기 (노보시비르스크 국립교향악단, 돔 우쵼늬 공연장)

by 누에고치 2020. 2. 12.

그렇습니다. 또 공연을 보러 왔어요. 이 동네 공연은 한국에 비하면 너무 싸고, 유학생활이 끝날 때쯤이면 감상후기가 적어도 스무 편은 넘을 것 같아요. 제일 큰 한은 공연장이 가까이 있다는 걸 모르고 1월 17일에 공연한 베토벤 3번을 놓친 것입니다.

공연 정보

2020.2.7 (금) 19:00

 

Бетховен. Концерт №5 для фортепиано с оркестром, «Императорский»

Шостакович. Симфония №3, «Первомайская»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181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 3번 "5월 1일" (1930)

 

Новосибирски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симфонический оркестр

Новосибирская хоровая капелла

Андрей Гугнин, фортепиано (Москва)

Дирижёр - Феликс Коробов (Москва) 

노보시비르스크 교향악단

노보시비르스크 성악합창단

안드레이 구그닌, 피아노 (모스크바)

펠릭스 코로보프 지휘 (모스크바)

 

Концертный зал Дома учёных СО РАН

500 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돔 우쵼늬, 콘서트홀

500루블.

 

후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베토벤 5번으로 잘못 읽고 "딴딴딴딴-"을 기대했는데, 피아노가 있길래 혼란 속에 자리에 착석해서, 첫 부분을 듣고서야 베피협 5번이구나, 내 잘못을 깨달았다. 작은 홀이라 그런지 약간 뭉개지는 오케스트라 소리와 다르게 피아노 소리는 오히려 또렷하게 잘 들렸고, 주자는 정말 잘 쳤다. 사실 피아노협주곡을 공연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객관적인 평가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손이 '굴러간다'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베피협 5번은 베피협 5번이다. "황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시작하자마자 첫마디부터 독주가 나오는 힘찬 곡이다. 협연자에게는 조금 부담이겠지만. 1악장부터 너무 사랑스러운 부분이 많은 곡이다. 차이코프스키 5번, 베토벤 5번, 드보르작 9번 같은 유명한 피스, 즉 '사골국물'이지만, 사골국물이 얼마나 구수한가.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매니아가 아니라 딱 나 정도로 발만 걸친 사람들이 좋아하기에 정말 좋은 곡들은, 역시 잘 알려진 곡들이다.

 

정말 베토벤스러운 곡이다. 베토벤스러운 피아노 작곡과 베토벤스러운 오케스트레이션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베토벤스러운 곡이다. 모차르트 시기 이전의 단조로움과 20세기의 복잡함 사이에 위치한 유명한 작곡가들의 작품은, 지식 없이 듣기에 적당하고 재밌다. 특히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 18-19세기의 이 시기에 포진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너무 단조롭지도, 너무 복잡하지도 않아서.

 

중기작품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에서는 모차르트의 경쾌한 피아노멜로디와 드보르작 교향곡의 웅장한 구성을 함께 볼 수 있다. 사실 베토벤 이전 음악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기술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피아노도 아직 현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고, 금관악기를 편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도 아니며, 편성이 작으니까 사람을 전율하게 하는 웅장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말러와 모차르트 사이엔 그런 차이가 있다.

 

베토벤은 정말 좋아하는 작곡가일수 밖에 없다. 고통 속의 천재. 베토벤의 거의 모든 유명한 작품은 제각기의 스토리와 각자의 리스닝포인트가 있으면서도, 싸인처럼 베토벤스러움이 묻어있다. 베피협 5번은 콘체르토가 전통적으로 가지는 오케스트라 - 피아노의 대비를 충족하면서도 전혀 따로 노는 듯하지 않고 너무 어우러져 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음악을 잘 쓸 수 있을까? 언제나 베토벤 음악을 듣고 나면 읊조리는 말이 있다. 베토벤은 천재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 3번 "5월 1일"*

집에서 아이튠즈로 미리 들어보고 갔는데 오, 굉장했다. 교향곡에 합창이라니. 이런 공연을 할인가도 아니고 정가 만 원에 볼 수 있다는 건 한국에서 불가능하다.

 

아직 많이 들어보진 않았지만, 아이튠즈로 듣다보니 어느정도 '쇼스타코비치스러움'에 대한 감은 온다. 뭔가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과 정통 음계를 활용하는 듯하면서 조금씩, 한번씩 어긋나는 화성, 어디서 강약이 왔다갔다할지 감이 안 가는 톰과제리 브금같은 느낌. 불안함. 가끔은 재치있고 경쾌한, 가끔은 행진곡스러운 진행.

 

단악장으로 진행된다. 섹션이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들으면서 눈치채지 못했다. 합창단이 나오기 전까진 이런 쇼스타코비치스러움이 계속 변주되면서 진행되고, 비올라 솔리, 목관 솔로, 목관 듀오, 스네어드럼의 리듬 속 금관 듀오, 현악기의 하모닉스 주법 같은 재미있는 구성을 계속 볼 수 있다. 아직 쇼스타코비치란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기 때문에, 도대체 이런 파편화된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합창이 등장하는 부분부터는, 베토벤 9번 "합창"을 직접 들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압도된다.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교향악단이 ff로 연주하면 그 연주에서 잘 수는 없는 것이다. 뇌세포의 50%가 활성화된듯한 상태에서 상기되어있다보면 어느새 빰! 연주가 끝나있다. 언제나 어리둥절하지만 기분좋은 경험이다. 결국 특정 뇌세포를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우리는 만 원으로 합법적인 마약을 하는 셈이 아닐까?

 

*사실 제목을 "5월 1일"이라고 해야 될지 "노동절"이라고 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первомайская니까 5월 1일이 아마 맞을 것 같다.


그렇다. 나의 리뷰는 도저히 전문적이지 않고, 여러분도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해한 수준이 딱 아, 알 것 같기도 한데, 정도이기 때문에.

 

두 곡의 커튼콜 사진을 끝으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블로그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1] 1부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협연자, 안드레이 구그닌. (과 지휘자 펠릭스 코로보프)
[사진 2] 2부곡 쇼스타코비치 3번 교향곡을 위해 합창단이 올라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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