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누에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은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반쯤 걸리는 외부도시 "아까졤가라독"에 있는데요, 다행히도 노보시비르스크관현악단과 실내악교향악단은 시내에서 한번, 아까졤의 "돔 우쵼닄"(학자의 집)에서 한번 공연을 연답니다. 크지 않은 홀이라서 오히려 더 가깝고, 가격도 더 싸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공연이 언제 있나, 알아봤더니 바로 다음 날 공연이 하나 있어서, 홀린듯이 알지도 못하는 실내악곡을 들으려고 예매했습니다. 여기서 실내악이란 사중주가 아니라 16-20명 정도의 챔버 오케스트라를 말합니다. 인터넷으로 예매하면 바로 화면을 제시하면 되서, 매표소касса의 아주머니 얼굴도 볼 일 없다는 사실! 그렇게 공연을 보고 와서 쓰는 이 글은, 일기 겸 공연후기입니다.
여담으로, 러시아는 추운 나라고, 노보시비르스크의 겨울 밤 날씨는 영하 20도를 가뿐히 넘기 때문에 (당일 -29도로 아슬아슬하게 20도선 유지) 외투가 두껍고, 실내에선 반대로 석유가 나는 나라답게 아주 따듯하게 난방을 때기 때문에 외투가 걸리적거립니다. 오히려 4월에 애매한 날씨에 난방을 안 때게 되면 실내에선 고비라고 하더라구요. 어쨌든 그래서, 건물마다 외투보관소, 가르지롭гардеров이 있습니다. 웬만한 식당이나 공공건물에서는 가르지롭에 외투를 맡기고 번호표를 받아가는 게 보편적인 문화입니다. 사실 한국도 기후는 비슷하지만, 이런 문화는 없어서 조금 낯설기도 합니다. 외투 보관소의 모습은 보통 아래와 같은데, 사진을 참조해주세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관람일: 2020년 1월 31일 (금), 19:00
공연장: 돔 우쵼닄, 대극장
출연진:
노보시비르스크 실내악악단
율리아 류비모바, 소프라노
안나 니도스삐소바, 피아니스트 (겸 하프시코디스트)
알림 샤흐마찌예프 지휘
마리나 야꾸셰비치, 나레이션
프로그램:
- 1부
- 안토니오 비발디 - 현악기를 위한 심포니 사장조, RV 149A.
- 비발디 - Vedro con mi diletto, 오페라 "주스티노" 중, RV 717A.
- 비발디 - 오페라 "다리오의 대관식" 중 심포니.
- 조반니 페르골레지 - Stabat Mater - Vidit suum dulcem natum.
- 울프강 모차르트 - 바장조 디베르티스멘토.
- 모차르트 - 오페라 "돈 주안" 중 엘비라의 아리아 Ah fuggi il traditor.
- 보리스 티셴코 - 노보시비르스크 프리미어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소나티네 (소나타 ин Щ)
- 티셴코 - М. 쯔볘따예바의 시를 기반으로 한 세 곡의 노래, 오케스트레이션 Л. 례졔찌노프
- 2부
- 아스콜드 무로프 - 종, 소프라노, 하프시코드, 피아노와 챔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블로키아나" , 블로크의 시에서
번역이 정확하지 못할 수 있으니, 원본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사실 분명히 악곡소개에서 '쇼스타코비치'를 들었는데, 프로그램이 바뀐건지 아니면 그냥 설명 과정에서 나온 것 뿐인지는 확실치 않아서 문제입니다...)
아마추어 비올리스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비발디와 모차르트는 다소 비올라를 멜로디(퍼바)와 베이스(첼로) 사이의 어중간한 부분을 맡기는 것 같아요. 적어도 이때까지 감상한 곡 (몇 개 안되는) 중에선 비올라의 사용에 있어 적극적인 역할이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구요. 후반부 곡에는 비올라 솔로도 있었는데, 차이콥스키 5번을 직관할 때도 그랬지만 언제나, 비올라 솔로가 나오면 어라? 하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비올리스트라서 그런 것일 뿐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 효과가 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티셴코랑 무로프는 사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는데, 비발디랑 모차르트를 듣고 난 뒤에 들으니까 17세기에서 20세기로 건너뛰는 느낌은 들었지만, 사실 듣고 나오면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내가 뭘 들었는지 모르는 현대음악적인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아직 저의 음악적인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뭔가 듣긴 했고 분명히 어떤 느낌을 받았으나, 이를 글로, 즉 전문적인 용어로 옮겨적을 수 없는 상황. 그렇지만 때로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비언어적인 감정들이 더욱 중요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분명히, 라캉이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티셴코와 무로프의 작품세계가 궁금하신 분들은 러시아어 위키백과를 참조해주세요.
보리스 티셴코 - https://ru.wikipedia.org/wiki/Тищенко, Борис Иванович
아스콜드 무로프 https://ru.wikipedia.org/wiki/Муров, Аскольд Фёдорович
2부 곡의 경우 갑자기 사회자가 나오길래 뭔가 돌발상황인 줄 알았더니, '피터와 늑대'처럼 나레이션이 아예 곡의 일부인 것이었습니다... 신선하긴 했으나... 마이크 소리가 너무 커서 오케스트라가 과도하게 안 들리는 건 별로였읍니다,, 러시아어 실력도 어중간해서 단어는 다 아는 단어인데 조합도 안 되고... 하지만 초반부 지나고는 나레이션이 거의 없고 음악이랑 소프라노가 나와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죠. 음악은 세계 공용어니까요,,
또 하나 신기했던 건 피아노 - 하프시코드가 있어서, 하프시코드랑 피아노가 둘 다 있어야 하는 경우 피아니스트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제2바이올린 3번주자가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또 지휘자가 단에서 내려와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느리고 휴지가 많은 곡이라, 자리 체인지를 하는 것도 공연의 일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현대음악은 아직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이른 듯합니다.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 노래를 듣다 보면 마치, 어느 순간 내가 이승으로부터 탈출하는 데에 성공하여 아득한 서쪽 나라에서 20년째 방아를 찧는 토끼와 함께 북핵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스스로에 대해, "클래식을 즐겨듣긴 하지만 전혀 고상한 취향이 아니며 빵빵 터지는 노래, 즉 신세계로부터, 1812 서곡, 차이코프스키 5번 등을 좋아할 뿐"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작곡가의 심오한 의도를 이해하진 못했더라도,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러시아 현대음악을 들어볼 기회는 매우 드물 것이고 있다 해도 굳이 찾아듣지 않았을텐데, 오직 여기서만 해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달에 서너번씩 자주 극장을 갈 예정이고, 4-5월쯤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공연을 보는 유학생활을 보내려고 합니다. 읽으시는 한국의 여러분께서도 추운 날씨와 바이러스 속,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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