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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03 / 기숙사비 지불, 복잡한 행정절차

by 누에고치 2020. 2. 9.

기숙사비 지불 및 서류작업

방을 배정받지 못한 채 주말이 와버렸다. 절차상 건강검진이 끝나야 방 배정이 가능한 것 같아서, 아마 늦어지면 다음주 말까지도 임시 4인실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오늘 10시에 기숙사이동 절차가 있다고 알고 있어서 10시에 애들 깨워서 부사감실에 찾아갔다. 종이쪽지에 이런저런 서명을 해주고 10동으로 가라고 (굉장히 불친절하게) 말해줬다. 당시엔 10동으로 배정받은 걸로 생각하고 짐을 갖고 가야 되는건가, 일단 몸만 가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일단 중국 친구들을 기다려보고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10동으로 그냥 가보니, 먼저 가있었던 것... 일련의 처리를 하고, 본관 캐시데스크касса에서 기숙사비를 납부하라고 안내해줬다.

 

본관 정문으로 들어가니까 경비가 출입증 пропуск랑 우리가 가진 카드가 안 맞는 것 같다고 해서 당황했는데, 다른 경비아저씨가 손에 든 지불증을 보고 돈내려면 저기로 가면 된다고 안내해줬다. 러시아어를 그나마 제일 잘하는만큼 옆에서 뭔가 통역을 내가 했어야 됐는데, 너무 빨리 진행됐고 이런 절차에 앞장서는 타입도 아니라 기력이 빠진 채로 맨 뒷줄에서 그냥 러시아어 2인자/인싸력 1인자인 중국 친구 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내가 알아들은 바로는 다음과 같았다.

  1. 부사감실에서 신청증 수령 및 안내
  2. 10동에서 전산등록 및 문서수령
  3. 본관 까싸에서 기숙사비 납부
  4. 본관2층 국제학생지원센터에서 도장받기
  5. 의료검사를 받으러 의료동으로 이동, 도장받기

그러니까 (3)지불한 다음엔 (4) 2층 국제학생지원센터로 가야 된다고 했는데 А가 3층 국제언어프로그램 ЦМУП 사무실로 가길래 뭔가 잘못알아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일 우리 직속부서에 가까운 ЦМУП 직원들이 이리저리 설명해줘서 2층 국제학생처에서 도장까지 받는데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의료검사는 지금 받을 수가 없어서 따로 연락이 온다고 ЦМУП-support centre에서 말해줬고 (결국은 А의 판단이 맞은 셈) А는 아직 방 배정은 안된 거라고 전해줬다. 나는 10동에서 나눠준 문서엔 분명 내 방 번호가 써 있는데 사실 이제 옮겨야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계류하고 있는 1а동의 касса 할머니에게 물어봤지만 할머니가 알고 있진 않았고, 길가던 학생한테 러영통역까지 부탁한 결과 대충 아직 아니라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다음에 궁금한 게 있으면 통역 구해서 사무실로 물어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사감실로 바로 가기엔 무서운걸...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사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감, 졔깐декан이 아니라 부사감 쯤 되는 위치였다)

 

[그림 1] 정말 러시아적인 업무시간режим работы 표지판.
[그림 2] 서류천국 러시아, 소화전 봉인씰에도 도장/싸인을 넣는 모습

또 실패한 수영 등록

다 끝나고, 대충 기숙사에 딸린 식당에서 빵 몇조각 사와서 점심을 때웠다. 너무 빨리 일어나서 그런지 피곤했고, 시간을 굉장히 많이 때워야 된다는 허탈함에 게임도 하고 잠깐 누워있다가 보니 3시가 넘어가고 있길래 이제 수영이라도 등록해보자, 싶어 걸어갔다.

 

...그렇지만 그 눈길을 걸어 도착한 결과는 담당자 없음. 금요일은 업무시간이 달랐던 것이었다. 오늘은 그래서 아예 업무시간 명함도 받았고 월요일 2시 이후로 오면 된다고 딱 들었다. 시간표가 어떻게 나올진 잘 모르겠지만 (만약 주말동안 웬만큼 중이염이 낫는 것 같다면) 최대한 가봐야겠다.

 

러시아에 대한 몇가지 단상

러시아어 회화는 점수도 괜찮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나보다. 말 자체를 워낙 잘 하지 못해서 그런건지, 일련의 구매과정이나 서류절차 진행과정에서 사람들이 내 말 알아듣는 것도 힘들어하고 나도 이 사람들 말을 잘 못 알아듣겠다. 아마 발음이나 발성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까 배에 힘을 줘서 말해보니 훨씬 알아듣기 편한 발음이 된 느낌이었다. 이걸 실전에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라서 확실히 여성근로가 활성화된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무실이나 매표소같은 소비자선 서류처리 기관에 여성 근무자들이 월등히 많다. 여기도 할머니, 저기도 아줌마, 여기는 아가씨... 아마 몸을 쓰지 않는 실내근무라 그럴지도 모른다. 딱히 덧붙일 말은 없고 그냥 그렇다.

 

저녁은 그제보다 조금 빠르게 столовая를 방문했는데 (여전히 борщ는 못 찾았지만) 확실히 плов이 있어서 좋았다. 백숙이랑 간된 볶음밥을 같이 주는 느낌. 그리 맛있진 않았지만 끼니 때우기에 나쁘지 않았다. борщ가 평시엔 운영하는 거면 좋을텐데. — (덧붙이자면 столовая는 2층에 있으며, 1층은 кафетерия/буфет이다. 팩에 담긴 음식을 레인지에 데워서 주는 곳인데, 나름 맛이 괜찮고 싸서 애용 중. 2층이 언제 열지는 모른다.)

 

방에서의 대화와 시간때우기

한국인들끼리라면 뜬금없는 잡담을 꺼내진 않을 텐데, 확실히 중국인들이랑 있으니까 태극권이 어떻니, 한의학이 어떻니 얘기가 나오면서 서로의 문화기반이 비슷함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영어 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쓰니까 대화가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인 Б가 소통은 잘하지만 기술적으로 따지면 제일 영어를 못 한다.) 나름 재밌게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또 어영부영 하루를 끝냈다. 폰으로 닭을 키우는 게임은 너무 소모적인 것 같아 그만뒀고 다른 게임도 (Apple Arcade를 통해) 해봤지만 역시 재미가 없었다. 오버워치를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게임이 아니라 인스타그램 구경이나 웹서핑을 많이 하고 있다. 한 번 보게 되면 다음 글, 다음 글을 보고, 시간이 흐르니까. 그렇지만 아무래도 뭘 하더라도 침대에서 폰으로 뭔가 계속 보면 금방 목이 작살날 것이다. 차라리 아이패드로 앉아서 보는 게 훨씬 목건강에는 좋은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유달리 추웠다. 지금(새벽 1시) 바깥 날씨는 -19도에 달한다. 이번주 날씨는 아마 주말에 정점을 찍는 것 같은데, 내일의 '최고'기온은 무려 -16도다. 되도록이면 밖에 나갈때 목도리까지 하고 귀마개도 끼고 나가서 중이염(이관장애?) 먹먹함이랑 감기재발 염려를 최소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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