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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01 / 개학 전 임시방에서의 생활_1

by 누에고치 2020. 1. 21.

안녕하세요, 누에입니다.

 

이번 한 학기동안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게 되어서, 이렇게 유학 일기를 써보기로 했어요. 써둔 일기가 많지만, 한 번에 게시하게 되면 검색엔진 특성상 별로 좋지 않아, 하루에 하나씩 올라갈 예정입니다! (검토할 시간이 생기기도 하고요..!) 오늘은 둘쨰날의 일기부터 적어볼게요. 첫째날은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 적었거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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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January 2020 (WED) / 개학전 임시계류 일상

 

해질녘이 되어서야 기숙사에 도착한 어제는 미처 일기를 쓰지 못 했다. 오늘은 꽤 느즈막히 일어나었고 하루종일 고된 일을 하지 않아 이렇게 일기를 쓸 여유가 비로소 생기었다.

 

일어나니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층마다 공동부엌이 있지만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고민 끝에 끓인 물을 세면대에 부어 어제 사둔 쁠롭плов[사진 1]을 락앤락에 데워 먹었다. 어제 차게 먹을 때보다 나았고, 이제야 그럭저럭 음식같아졌다. 기름이 많아서 설거지엔 조금 까다로웠지만... (쁠롭은 마트에서 사서 집에서 데워먹는 것보다는, столовая나 буфет에서 바로바로 사 먹는 게 훨씬 맛있고 가격차이도 크지 않다.)

 

[사진 1] / 쁠롭은 기름진 중앙아시아식 볶음밥이다. *사진출처-각주

 

쁠롭을 다 먹고 나니 먹을 게 없어 얀덱스 지도(Яндекс. Карты)에서 제일 가까운 마트를 검색해서 갔다 왔다. 한국에서 눈쌓인 길을 걸어보지 못한 것도 어연 몇 해인데, 이렇게 한가득 쌓인 눈을 밟자니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주 미끄러운 길이었다. 홍차랑 컵라면(도시락) 두 통을 샀고, 아주 만족스럽게 소비하고 있다. 러시아에 온 한국인에게 도시락은, 라면스프, 건더기, 그리고 무려 포크까지 들어있으면서도 천 원 미만으로 살 수 있는, 아주 가성비 좋게 느껴지는 음식이다.

 

2시에는 예정된 바대로 자원봉사자 학생 A*가 가이드를 나왔다. 새로 입주한 중국인들과 한국인들(나와 B)이 심카드 개통과 현금인출, 그리고 간단한 쇼핑을 했다. A는 한국어과 학생이라고 했고, 아직 한 학기를 다닌 것 같다. 한국어를 아주 잘 하진 못했지만,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한국인들하고 꽤 활발하게 소통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이 글에서 이니셜은 등장 순으로 알파벳을 붙이며, 실명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아직 휴일이고, 다음주까지 아무런 클래스도 없기에 (같은 처지인) 중국 유학생들하고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통 나보다 나이는 많은 것 같고, 대학을 다니다 온 사람부터 직장인까지, 내륙부터 광동까지 아주 다양한 구성원이었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 방에 있는 C는 러시아에 세 달을 살았고 러시아어를 꽤 배우긴 했지만, 둘 다 러시아어를 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 (나도 '한국에서' 2년을 한 것이라) 많은 대화를 나눌 정도는 못 되었다. 대신 다들 영어는 불편하지 않게 곧잘 해서, 가끔 번역기를 동원하곤 하지만 웬만한 대화는 나누고 있다.

 

B는 나보다 영어나 러시아어 실력은 좋지 않은데도, 아주 말을 잘 한다. 말 자체를 잘 하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소통실력이 늘어가고는 있지만, 아직 공개된 대화의 장에서 무리없이 남들하고 소통하기엔 부족하다. 그다지 말을 별로 즐겨하지 않기도 하고, 일반적인 관심사와는 조금 떨어진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곳 기숙사는 남녀동이 따로 없다. 방만 성별대로 나눠져있다. 즉 건너편 방에 이성이 살고, 복도와 공동주방은 혼성시설이 되는 것이다. (화장실은 방마다 있다.) 우리 동엔 외국인이 많고, 유학생들 중엔 영어는 못하는데 러시아어는 잘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고, 아예 자기 나라 말만 할 줄 아는 학생도 몇몇 있다. 우리 학교에서 유학생을 정말 많이 봤었지만, 내가 유학생이 되어 와보기는 처음이라 신기하다.

 

한동안 괜찮아졌었던 어깨가 수영을 쉬니 다시 아파온다. 다음주에 시간표가 나오면 바로 수영을 등록하러 가야겠다.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 주 시간표는 이미 이메일로 도착해있었다.) 눈이 쌓이는 걸 봐서는, 아직 자전거를 타기엔 무리일 듯하다.

 

 

[사진 1]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ПЛОВ В РОССИ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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