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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02 / 엔게우 거주등록, 숲, 레스토랑

by 누에고치 2020. 2. 7.

안녕하세요, 누에입니다. 지금 일기장에 써놓은 일기와 바로 블로그에 써넣는 일기의 순서가 뒤죽박죽되고 있는데, 예약 기능 등을 활용해 최대한 순서대로 올려서 독자 여러분께 혼선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2020. 01. 09 (목)

또 하루가 끝나서, 이제 자고 나면 4일차다.

 

어제와 비슷하게 10시 정도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수영장에 등록하러 갔지만, 담당자가 두 시는 되어야 출근한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에 가려고 했는데, 거주등록 행정절차를 끝내고 나니 바로 저녁이 되어서 결국 못 같다. 담당자는 아니고 그냥 카운터 보는 할머니가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대충 알아듣긴 했는데, 말이 안 나오더라. 옆에서 애기 데리러 온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다 이해했냐, всё понятно? 물어봤는데, 거기에도 뭐라고 대답할 지 모르겠어서 모기만한 목소리로 조금 이해했다고, чут-чут... 하고 나왔다. 러시아에서도 고쳐지지 않는 소심함...

 

가는 길이 완전 눈덮힌 숲이라 동화책이나 영화에나 나오는 것 같았다. 엄청났다. 그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현지인들에게 몇 번이나 추월당한 것 같다... (지나가도 될까요можно я пройти라고 한다.) 눈에서 걷는 것에 적응한 사람들인듯 하다. 학교 바로 뒤에 숲이 있다니 되게 신기하다. 눈뿐이라 딱히 별 생각은 안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여름엔 모기깨나 나오겠지...

 

또 숲 한가운데에 청설모 집을 만들어둬서, 거기 쏙 들어가있는게 웃겼다.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니 슈슉- 도망갔다. 근데 진짜 게임에서 들리는 것처럼 슈슈슈슈슉 소리가 나서, 신기했다. 도시 한가운데에 숲이 있고 청설모 집이 있고 슈슉거리면서 눈치본다니. 신기한 도시다.

:: [사진 1] / [사진 2] 참조

 

[사진 1] 눈 덮힌 숲길. 동화책에서 보던 딱 그 일러스트다.

 

[사진 2] 청설모의 집... 가까이 가서 더 찍으려고 했는데 도망가버렸다!

오늘도 학교시설을 소개하는 코스가 있다고 하길래, 어제처럼 자원봉사 학생이 도시 투어를 시켜주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것, 기숙사 등록이랑 거주등록, 수업 신청 등 일체 서류과정을 진행해주는 거였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 굉장히-불친절한-기숙사-부사감님의 방에서 기숙사등록 관련 서류를 썼고,

  • ЦМУП(외국인교육프로그램센터) 직원분이 안내 나오셔서 출입카드 쁘라뿌스끄пропуск를 만들고 (미리 준비한 사진이 아니라 웹캠으로 현장에서 찍게 된다. 굉장히 못생겨진다.) 

  • 외투보관소에 옷 맡기고 (맨날 3분전 도착하느라 정작 지금까지 사용해본 적이 없다.)

  • 복사실에서 여권 복사해서

  • ЦМУП 사무실에서 서류 작성하고

  • 외국인학생 지원실에서 또 서류 작성하고 복사한 여권을 제출한다.

    • 제출한 여권은 거주등록증이 되어 비자연장 용도로 또 쓰인다고 한다. 서류천국 러시아!

  • 그리고 사무실에서 작성했던 기숙사신청서류를 제출했지만 5시반 칼퇴하셔서 처리는 다음날로 연장.

가는 길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 [사진 3] / [사진 4]

 

[사진 3] 대학교 3블록에서 찍은 신본관 모습
[사진 4] 2블록 정면으로 들어가는 동양 학생들의 일련

이 과정이 다 끝나니까 시간이 꽤 흘렀다. 5시 반 남짓이었고, А가 오늘은 좀 제대로 된 걸 먹으러 가자고 했다. 얀덱스 맵으로 찾아보니 근처에 마침 괜찮아보이는 레스토랑 <хлеб и нино>이 있길래, 출발했다. 룸메인 중국인은 자기 와이프랑 먹으러 간다고 해서, 한국인 둘만 나갔다.

 

인터넷 사진상으로도 그냥 무난한 러시아/조지아/우즈벡 요리가 나오는 식당이었고, 퀄리티도 무난했다. 자주 보이고 블라디보스톡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조지아음식 체인점인 수쁘라супра, 사찌비сациви랑 대략 비슷한듯. 나는 아자르식 하차푸리랑 라그만, 홍차를, А는 말린 고기 모듬을 시켰다.

  • 하차푸리: 러시아식 피자라고 보면 된다. 짠 치즈피자라고 보면 된다.

    • 아자르식: 돛단배처럼 움푹한 모양의 빵에 뜨거운 계란이랑 치즈를 담아 내와서, 뜨거울 땐 주변빵을 퓨레처럼 찍어서 먹다가 식으면 일반 피자처럼 썰어먹으면 된다. 아주 맛있지만 사람에 따라 짤 수 있다! 가격은 300루블대.

  • 라그만: 김치찌개같은데 뭐라고 설명할 순 없다. 우동사리처럼 굵은 면에 고기 몇 덩이, 각종 채소가 들어가 무리없이 먹을 수 있는 중앙아시아식 국물면요리이다. 한국인한테 아주 잘 맞을 것! 가격은 200루블대였다. (레스토랑이라 비싼 편)

  • 홍차: 그냥 홍차지만 보통 러시아 레스토랑에선 홍차는 한잔이 아니라 500мл를 주기 때문에 한병 값으로 1-300루블을 받는다. 쓰이는 차는 대부분 고급 잎차지만, 그래도 가성비 따지는 사람이라면... (학생들이 가는 카페테리아인 스딸로바야столовая / 부펫буфет에선 티백으로 몇십-몇백원에 판다.)

*1루블은 20원으로 계산하는게 편합니다

말린 고기 모듬은 내가 시킨 요리가 아니라 많이 안 먹어봐서 모르겠지만 평범한 말린고기, 육포, 그리고 생고기 세 가지가 같이 나왔다. 가격은 1000루블 정도로 꽤 비쌌던 것 같다. 모두 맛있게 먹었다.

 

이런 러시아 정통 레스토랑에선 따로 계산대가 없어서 자리에 앉아서 청구서 счёт을 달라고 한 뒤, 카드나 현찰로 결제하면 чек을 준다. 그리고 식탁에 남은 상자나 봉투에 팁을 조금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된다. (중-고급 레스토랑 중 팁을 권장하는 곳의 사례를 보면, 총 가격의 5-10%를 권장하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사진은 식전빵밖에 없다. 다음에 다시 먹으면 꼭 사진을 찍어오도록 하겠다.

:: [사진 5] / [사진 6] 참조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물이랑 우유를 사왔고, 밤에 할 게 없었으므로 홍차나 끓여마시면서 중국 친구들과 아주 많은 얘기를 했다. 불편한 영어로 얘기했지만, 대충 뜻은 통하고 있다. 확실히 동아시아인이라 습성이나 생각하는 건 대체로 비슷하지만 특정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기본적인 스탠스가 다른 것 같다. (안보, 국제관계, 대만/홍콩 문제 등) 내 생각을 강력하게 피력하지 않도록 조심만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중국 친구들도 나름 대화가 좀 위험해져간다 싶으면 but war is bad and we need peace라는 마법의 문장으로 다시 돌아온다.

 

어제 가이드를 해준 러시아 학생 Б한테 지금 방학중인건지 물어봤는데,

  1. 이제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났고
  2. 이제 시험기간이 2-3주 정도 시작되고
  3. 잠깐 방학을 했다가
  4. 2월에 2학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러시아 학생들에겐 사실상 순수한 겨울방학은 2주 이하인 셈이다. 대신, 여름방학은 훨씬 길다. 러시아의 학사일정이나 학제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데, 나중에 따로 포스팅해보겠다.

 

아무튼 Б와는 한국말과 러시아말을 섞어 카톡을 하다보니 꽤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 그래도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우리의 임시 4인실에는, 그래서, 일본어통역 전공이라 자꾸 중고등학교때 주 1시간씩 배운 나한테 일본어를 써먹으려 하는 В와, 말이 아주 많아 방의 대화를 주도하는 Г, 이렇게 두 중국인과, 고인류학을 위해 러시아 유학을 결심한 А, 노어과를 2년 다니다가 이대로 계속 다니면 학위말곤 남을 게 없을 것 같아 어떻게든 유학을 신청해 온 나, 이렇게 두 한국인까지, 4명이 별별 주제를 꺼내서 대화를 하고 있다.

 

조용한 두 사람이 은근슬쩍 대화에서 빠지면, 방에는 은근히 취미가 잘 맞고 활동적인 나머지 두 익명의 유학생들이 태극권을 배우고,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재밌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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