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세 이래 초중고 12년 + 대학 4년 + 군 1.5년 + 석사 1.5년을 논스톱으로 달려왔고, 박사 진학까지 그대로 쉬지 않겠다는 원대한 꿈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막상 석사 4학기만에 논문을 끝내고 바로 9월에 입학하려니 실질적으로 3학기 말에 너무 많은 일들이 몰리고 있다. 특히 11월쯤부터는 상당히 심해져서 '실제로 아무것도 하진 않는데 압박만 받다가 고통스럽게 잠에 드는' 날이 많아졌다. 현재 몰린 일들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학과조교 ② 논문준비(학술지투고&학위논문) ③ 유학준비 ④ 코스웍 ⑤ 기타 집안일 등
학과 조교 | 이 가운데 멀쩡하게 하는 건 학과조교 밖에 없는 것 같다. 어쨌든 교내 각 부서가 요구하는 기한이 있고 거기에 맞춰서 보내면 되니까. 한편으로, 이것은 학과조교를 하느라 다른 네 가지 일에 소홀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논문 준비 | 논문 준비도 문제다. 공저자로 같이 쓰는 교수님과 1-2주만에 미팅을 할 때면 선행연구 요약하고 줄글로 정리해서 가도 모자랄 판에 전날 부랴부랴 파이썬 돌려서 엑셀 째로 가져가고, 설명하느라 2시간을 다 날린다. (당연하다. 전날 새벽 2시에 나온 값이니까 나조차도 결과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는 것) 퍼블리싱하는 것이 곧 학위논문 주제이기도 해서, 학위논문만의 준비는 다음학기로 일단 미뤄버린지 오래다.
유학 준비 | 유학준비는 또 어떤가. 정부초청장학금은 그냥 필요서류 리스트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나이브했다. 교수님과의 컨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학교, 원하던 전공에 대한 T/O가 올해 정부초청에는 없다. 이 와중에 돈 아껴보겠다고 직접 번역해서 공증, 아포스티유를 떼어오는 방법을 검색하고 앉아있다. 이 모든 의문을 해결해줄 수 있는 러시아 교육부나 현지 대학교 입학처에 보낸 질문 이메일은 읽혔는지, 씹혔는지, 불탔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내가 최근 며칠간 봉착한 지옥의 순환고리는 다음과 같다.
① 호기로운 출발: "오늘은 한 분에게라도 컨택 메일을 보내야겠다!"면서 호기롭게 현지 대학교 사이트를 연다.
② 잠재 지도교수 목록 찾기: 학교마다 단과대/학과 구분은 당연히 다르다. 학과 제목이 '노어과/언어학과/인문학부'면 다행이지만 '외국어로서의노어과/외국인을위한노어과/외국인인문계학생을위한노어과/외국인이공계학생을위한노어과/실용언어학과/음성학과' 등 세분화되어있으면 다소 막막해진다.
③ 연구관심주제 물색: 각 학과마다 등록되어있는 수많은 교수님들의 연구주제를 알기 위해 출판물을 다 눌러본다. 내부적으로 교수자 페이지 시스템이 있는 대학이면 다행이지만, 없는 대학은 e-library(러시아 논문검색사이트 - 검색기능이 정말 별로다) 또는 구글 스콜라를 켜놓고 대조해야 한다.
④ 어라 내가 뭘 하고 있지: 어느순간 크롬에는 40개의 탭이 열어져있으나 나는 미궁 속에 빠져있을 뿐 찾아낸 것은 없다.
⑤ 호기롭지 못한 재출발: 머리가 어지러워져 탭을 모두 꺼버리고 1번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자동화하려고 ChatGPT한테도 시켜보고 (Hallucination이 너무 쉽게 발생한다.), GPT API와 웹 크롤러를 연결하는 방법까지 생각해봤는데 코딩의 늪에 빠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웹페이지의 미궁에 빠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코스워크 | 코스웍은 그나마 이번학기에는 할 게 많지 않아서 양반이다. 사실 정석대로였다면 거의 매주 발제를 해가야 되는 건데, 총 두 개 수업 중 하나는 부담이 적은 수업을 내가 골랐고, 다른 하나는 수강생이 나 하나밖에 없어서 비교적 루즈하게 진행한 편이다. (FM으로 진행하려면 아마 교수님도 힘들지 않을까?)
기타(집안일 등) | 그래서 그런지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일상적인 일들(샤워 · 식사 · 청소 · 빨래 · 운동)조차 시작하기 전에는 너무 귀찮고, 시작하고 나면 폰을 들여다보는 등 다른 방해요소에 이끌려서 수행시간이 늘어진다.
의지와, 체력과, 집중력도 배터리처럼 충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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