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집에 굴러다니던 책인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편이라 한 시간 정도만에 속독으로 읽은 것 같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말하는 '공부'는 흔히 말하는 실전형 공부가 아니다. 그야말로 대학에서 공부하는 진정한 학문으로서의 공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김영민은 이 한 권의 책에 대학에서, 또 대학원에서 진정한 지식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공부해야 하며,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상기시켜주는 에세이 몇 편을 모아두었다. 사실 대학교수의 말이 그렇듯이 구구절절 옳은 말이지만 실질적인 조언은 되지 않는 부분이 꽤 많다. 그러나 학문의 원칙은 그러한 원론적인 부분을 정의하는 것이기도 하니 어쩔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저자 본인은 각종 저술활동으로 꽤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정작 학계에서 한창 활동할 때에는 반골 기질로 따돌림을 조금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학계의 잘못된 관행을 일부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기억나는 부분은 연구의 범위에 대한 내용이다.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가령, 호랑이가 사실 조류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라고 해보자. 이렇게 세간에서 보기에 너무 어려운 연구를 성공해내면 주목을 받을 수 있겠지만 실패할 확률도 높고,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튀는 것을 싫어하는 학계에 의해 반감도 살 수 있다.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는 지동설이 있었고, 그 정도로 새롭고 충격적인 학설이라면 21세기에도 충분히 배척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명백한 연구, 가령 호랑이 한 마리의 질량은 호랑이 한 마리를 이루는 요소의 질량을 모두 합한 것과 같음을 증명해내는 연구라면 사실 연구 자체의 의미도 없고, 매너리즘적인 학계의 경향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책의 일부분을 예로 들었지만 저자는 이렇게 학술활동과 대학에서의 학문 수행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에피소드를 피식 웃음이 날 정도의 '교수개그'를 잘 섞어가며 저술했다.
사실 워낙 가볍게 읽으려고 속독을 해서 많은 부분이 기억나진 않는다. 김영민 역시 독서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는데, '많은 책을 깊게 읽어야 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느냐?'라고 자문하며, '우선 많은 책을 속독하고, 괜찮아보이는 책을 정독해야 한다'는 놀랍도록 내 마음에 드는 답을 주었다. <공부란 무엇인가>가 그리 깊은 내용을 담은 책 같아보이진 않기에 두 번 정독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절만은 내 독서원칙을 뒤흔들만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대학이 취업사관학교처럼 되면서 반대급부로 대학수업다운 수업, 인문학다운 인문학을 찾는 사람들 역시 많아졌다. <공부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고, 김영민 교수가 유명세를 탄 것도 그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대학생의 학문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대학생이라면, 가볍게(또는 무겁게!) 읽어볼 용도로 추천할 만한 교양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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