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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문화생활

임시 공연평 (5개 작품)

by 누에고치 2020. 5. 6.

지난 글(https://nuee.tistory.com/384)에서 관람했던 공연의 목록을 작성한 뒤로, 자꾸 이 목록에 있는 공연의 후기를 다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꾸준히 나를 눌러왔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공연평을 쓰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니, 짤막한 공연평으로라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한다.

 

호두까끼 인형 (2부)와 로미오와 줄리엣(3부)는 단지 내용상의 부분을 생략했을 뿐이므로 적지 않는다.

 

말러 3번 교향곡

구스타프 말러

국립까짜콘서트홀

 

전좌석 표값이 같아서 꽤 앞자리에 1500루블로 앉을 수 있었다. 500루블짜리 공연만 보다가 1500을 쓰니 조금 낭비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말러의 공연을 5열에서 듣는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다. 바흐 이래로 오케스트라의 구성이 점점 커지고 말러 시대에 이르르면 과도하게 비대해졌다는 소리도 나오지만, 그 비대한 규모에서 나오는 웅장함을 경험해본다면 결코 함부로 '과도하다'라는 말을 쓸 순 없다. 차이콥스키의 빠른 악장이나 베토벤의 합창에서처럼, 순식간에 압도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프란체스카 다 림니

표토르 차이콥스키

НОВАТ 소무대

 

특이한 구성이었다. 소무대의 특성을 이용해 무대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고, 주인공들(성악)이 2층에서도, 뒤에서도, 무대 앞쪽에서도 나오는 구성이었다. 합창과 성악의 경계에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신기했고, 오케스트라가 가장 중심이라 음악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작품의 내용은 싹다 러시아어 자막이나 음성으로 나왔기에 잘 못 알아들었지만, 대충 사랑 이야기. 고대 그리스같은 복장을 입고 가면을 통해 가벼운 동작을 표현하는 것도 신선했다.

 

백조의 호수

표토르 차이콥스키

НОВАТ

 

말이 필요없는 명작이다. 사실 스토리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수록곡이 하나하나 주옥같은 작품이다. '주옥같다'라는 말은 아무 작품에나 쓸 말이 아니다. 이렇게 장인이 명주천으로 옥석을 수천 번 닦아서 광낸 보석같은 작품을 라이브 오케스트라로 들을 기회가 꽤 된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나는 감히 여러분이 <백조의 호수>를 실황으로 보지 않고 죽었다면 그것은 인생에 있어 티켓값의 열 배 정도를 손해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목관과 스트링을 섬세하게 쓰면서 그 위에 금관을 적당한 위치에 올리는 작곡가가 또 있을까. 서유럽 작곡의 전통을 차이콥스키는 그만의 타고난 감각으로 정말 세련되게 정립시켜놓았다. 우리가 '클래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마지막 수정자는 아직까지 차이콥스키가 아닐까.

 

이고르 공

알렉산드르 보로딘

НОВАТ

 

사실 위에 저렇게 찬사를 써놓고 또 반복하긴 좀 묘하지만, 이고르 공의 수록곡도 만만찮은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유명한 서곡과 폴로베츠의 노래를 제외하고도, 상대적으로 잔잔한(=졸린) 1부곡의 노래를 제외하면 보로딘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졸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노래가 꽤 많다. 안타깝게도 보로딘의 작곡엔 차이콥스키만한 중독성이 없어서 오래 듣자면 질리는 경우가 많은데, 차이콥스키의 노래가 페테르부르크적인 감성을 표현해준다면 보로딘의 작곡은 상대적으로 아시아의 초원지대를 연상하게 하는 것 같다.

 

페르 귄트

에드바르드 그리그

НОВАТ

 

타이틀만 보고 예매했던 곡. 정통 페르귄트인줄 알고 보러 갔는데, 사실 곡만 이용해서 바꾼 현대극이었다. 페르귄트의 오리지널 스토리에 현대화된 복장, 정신병원, 고대 유럽신화가 뒤섞인 공연. 시각적으로 공연은 매우 재밌었고 즉각적인 웃음포인트가 있는 편이라 부담없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뭘 말하고자 하는 공연인지는 1회차로는 알기 어려웠다. 내 옆에 앉아있던 러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지. 또, 페르귄트의 주요곡들이 모두 등장하기에 익숙한 배경음악 아래에 전개되는 이야기를 구경할 수 있었으나, 원작 페르귄트의 선율이 딱히 존중되는 분위기는 아니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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