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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러시아어 공부

쉬운 예문으로 보는 통사론의 적용 사례

by 누에고치 2021. 8. 9.
* 본 자료는 교양 수업시간 발표자료로 사용된 것으로, 무단 전재 및 복제를 엄격히 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번학기 언어학 강의를 들으면서 통사론 발표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 러시아어와 통사론의 교집합에서 다룰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조사해보았고, 가장 적절한 주제 3개를 골라 발표에 넣었습니다.

 

여러 논문을 찾아보다가 하나씩 사례를 넣은 것이라 사실상 '논문 쉽게 읽기'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제 아이디어에서 100% 비롯한 글이 아닌 만큼, 애드센스 광고 제외 요청이 들어가 있음을 밝힙니다. 각각 서승현(2003), 이경희(2004), 안병팔(1997)의 논문이며, 본문 마지막에 정확한 출처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

러시아어 문법은 어려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명사와 형용사에는 격이 6개 있고 동사에는 시제가 3개, 상이 2개 있고 이런 격 시제 상은 수많은 동사와 전치사마다 각각 다르게 후행해야 하며, 심심하면 부동사 형동사가 나오는 언어니까요. 그렇지만 정교한 문법은 학술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연구대상이구요. 또 후술하겠지만 일상어휘를 더 다채롭게 만들고, 문학작품에서 이용되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문법을 직접적으로 설명드리기보다는, 러시아어의 통사론이 학술적으로 이용되는 몇 가지 사례를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1. 어순 뒤섞기

러시아어는 품사간의 관계가 대부분 격변화와 동사변화로 정해지기 때문에 인도유럽어족 언어중에서 어순이 자유로운 편에 속합니다. 어순이 자유롭다면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어순을 뒤섞을 수도 있겠죠.

 

예시 1: 자유로운 어순 변경의 예

  • Я хотел, чтобы ты познакомили Ивана с Ворисом 나는 당신이 이반을 보리스에게 소개시켜드리길 바랍니다.

라는 단어의 어순을 단순히 바꿔서 b c d e로 표현해도 뜻은 동일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

 

예시 2: 자유롭지 못한 어순 변경의 예

한편 복문으로 들어가면, 어순을 바꾸는 것이 비문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대한 단순한 복문을 가져왔는데요. 문장을 보시면

  • Я сказал про, что я отдал ключ брату. 나는 '내가 형에게 열쇠를 줬다'고 말했다.
  • *Я брату сказал про, что я отдал клюу. 나는 '내가 열쇠를 줬다'고 형에게 말했다.

 

여기서 '형에게'를 앞으로 빼버리면 비문이 됩니다. 이게 왜 이러냐면 про라는 공목적어(null object)는 영어의 which, that처럼 뒤따르는 어구를 결속하는 역할을 하는데, 공목적어의 결속을 무시하고 '형에게'을 앞으로 뺐기 때문에 비문이 된 것이죠. 이것을 보면 어순 뒤섞기가 단순히 언어유희나 강조를 위해 사용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 뒤섞어야 비문이고 어디까지는 성립되는 문장인가, 를 알아봄으로서 학술적인 목적으로, 문법을 탐구하는 데에 사용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2]

 

2. 통사적 구조의 은유적 공간화

러시아어는 감정표현에 있어서 얼굴이 초록색이 됐다라든가, 상당히 독특한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도 통사적인 부분과 관련된 것은 감정표현에서 영어의 in에 해당하는 в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 Он пришел в страх.
  • Он в страхе.
  • Он находится в радостном настроении.[3]

 

그가 공포 안에 있다, 라는 말로 한국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구조죠. 또한 그가 행복한 기분에 위치하고 있다. 라는 문장의 존재로 은유적인 공간화라는 것이 완전히 증명됩니다. 통사적 구조를 연구하여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언어화하는지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죠.

 

3. 문학작품에서의 통사론 이용 - 자도르노프 작품의 사례

한편 이러한 문장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통사론 그 자체를 일부러 어겨서 메타적으로 언어학을 이용한 작품도 있는데요. 자도로노프의 ‘푸른 위성의 수수께끼’란 소설에서는 내내 문법적으로, 화용론적으로, 의미론적으로, 언어학 전반에 걸쳐 골고루 틀린 화행을 사용해 유머를 자아냅니다.

 

1) 첫째로 영어의 can에 해당하는 мочь(모치) 동사의 1인칭복수 동사변화(we can do)를 주인공 빼고 모두가 можем(모쥄)이 아니라 могём(마굠)이라고 쓰고 있는 것.[4] 주인공은 당연히 혼란에 빠집니다.

 

사실 이건 мочь 동사가 1인칭단수는 могу(마구), 2인칭단수는은 можешь(모제시), 3인칭 복수는 могут(마굿)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어원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변형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할 바 있어도, 라는 것은 훈민정음 시대만 해도 '홀빼이셔도'로 발음되었고 우리도 어원적으로 그럴 법도 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현대에 그런 발음을 사용하는 것은 그저 유머일 뿐이죠.

 

2) 그리고 원래 변화가 불가능한 부사 когда를 когдам, когду로 격변화시켜서 7등급을 일부러 받은 악동의 사례[5]가 나오기도 합니다.

 

3) 문법적인 오류 외에도 대장장이와 귀뚜라미가 둘다 Кузнец로 시작하는 어근을 가진다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이 나오는 등 소설 내내 통사론/의미론/표현론적으로 뒤틀린 슈제트가 등장합니다.

 

‘틀리는 문법’이라는 유머를 모국어 화자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외국어 사용자들에겐 매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해당 형식의 유머가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웃음을 유발하는지 진지하게 분석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부분입니다.

 

닫는 말

이렇게 세 가지 사례를 통해 러시아어 통사론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를 분야별로 아주 짧게 살펴보았습니다. 도대체 한국인이 외국어의 통사론을 가지고 뭘 탐구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가지신 분이 있으셨다면 분명히 답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실질적으로 각 문단의 '텍스트'라고 볼 수 있는 3개 논문:

  1. 서승현, ‘러시아어 구어체에서의 뒤섞기 (scrambling), 자질의 동질성 그리고 상대적 최소(Relativized Minimality)의 관계’, 한국노어노문학회, 노어노문학 제 15권 2호(2003).
  2. 이경희, '러시아어 ‘감정’표현에 있어서의 은유화 양상', 한국노어노문학회, 노어노문학 제 16권 1호(2004). 
  3. 안병팔, '러시아 유머의 형태-통사론적 분석 -자도르노프의 유머를 중심으로-', 한국러시아문학회, 러시아소비에트문학 제 8권(1997).

 

이 외에도 텍스트로 인용된 문헌:

  • Yadroff, M. "The Syntactic Properties of Adiunction." unpublished manuscript. 1991.
  • М. Н. Задорнов. Загадка голубой планеты. Не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М: Советский писатель. 1988. 

[1] 일반적인 뒤섞기에 관한 내용과 예시문장은 서승현, ‘러시아어 구어체에서의 뒤섞기 (scrambling), 자질의 동질성 그리고 상대적 최소(Relativized Minimality)의 관계’, 한국노어노문학회, 노어노문학 제 15권 2호(2003), p. 63.을 참조하였다. 예문은 Yadroff, M. "The Syntactic Properties of Adiunction." unpublished manuscript. 1991.을 해당 논문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2] 공목적어에 관한 내용과 예시문장은 위의 논문, pp. 72-73.을 참조하였다.

[3] 전치사 В의 사용에 관한 학술적인 설명과 예시문장은 이경희, '러시아어 ‘감정’표현에 있어서의 은유화 양상', 한국노어노문학회, 노어노문학 제 16권 1호(2004), pp. 86-87. 을 참조하였다.

[4] М. Н. Задорнов. Загадка голубой планеты. Не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М: Советский писатель. 1988. С. 55-56. 안병팔, '러시아 유머의 형태-통사론적 분석 -자도르노프의 유머를 중심으로-', 한국러시아문학회, 러시아소비에트문학 제 8권(1997), p. 16.에서 재인용.

[5] Задорнов(1988), С. 170. 안병팔(1997), p. 2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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