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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기타분야 공부

"안녕하세요. 오늘의 주제는 맑습니다." - 마르크스의 사상 이야기

by 누에고치 2021. 5. 4.
일러두기: 이 글은 2017년 고등학교 발표 대본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수정과 퇴고를 거쳤지만 본질적인 내용상의 오류가 있거나, 지금의 제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17. 5. 24

 

본 기고문은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마르크스의 학문적인 입장을 간단히 정리하기 위한 글이며, 특정 국가나 정치 체제를 옹호하려는 목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제가 예전에 트위터를 할 때 "오늘의 날씨는 맑습니다"라며 하늘과 마르크스를 합성한 사진이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트위터도 PC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긴 했습니다만, 재밌는 드립은 여느 커뮤니티처럼 어느 정도의 선에서 청자들이 걸러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트위터는 과격파의 상징이 되어있는 것이 참 슬프네요.

 

여담이 길었는데, 아무튼 오늘은 이 옛날 드립으로 글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주제는 맑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그 사진을 직접 쓸 순 없지만, 대충 재구성해보았습니다.

 

 

맑스는 19세기 사람입니다. 유럽에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절정을 맞이했던 시기였죠. 제국주의는 어느순간 미국주의로 바뀌어있지만, 자본주의는 지금도 진리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맑스는 바로 자본주의를 탐구했던 학자였죠. 그래서 맑스는 옛날 사람이지만, 맑스의 철학은 옛날 철학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맑스의 철학을 인용하고 있죠.

 

유물론과 계급론

맑스는 윤리 책에도, 사회문화 책에도, 경제 책에도 나오는 특이한 사람인데, 저는 그게 이 사람이 유물론자라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유물론자가 뭘까요?

 

철학자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잖아요? 칸트는 의무, 공자는 인, 플라톤은 이데아. 그런데 맑스는 이렇게 고상한 가치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맑스의 가치는 뭘까요? 네. 돈, 그리고 물질입니다.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계급도 돈에 따라 나뉜다.

 

여기서 오늘 배울 계급론이 나오는데요. 모든 사람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부르주아거나 프롤레타리아이거나, 둘 중의 하나로 계급이 정해진다는 것이 계급론입니다. 일정한 기준이란 돈과 관련되어있겠죠. 이건 있다가 자세히 알아보고요. 그런데 이 계급이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역사적 계급의 발전과정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인간은 동물하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윤리학에서, 과학에서의 설명이 다 다르죠. 맑스는,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존수단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동물들은 자연에 이미 있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거나, 열매를 따먹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농사를 지어 먹고살거나, 공장에서 음식을 찍어내기도 하니까요.

 

1. 시초 축적ursprüngliche Akkumulation

음식을 생산하려면 땅이 필요합니다.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기계가 필요하고요. 이 음식이나 자동차같은 상품을 생산하는 수단, 땅이나 기계를 생산수단이라고 합니다. 원시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생산수단을 공평하게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어떤 사람들이 남의 생산수단을 뺏기 시작한 겁니다. 분명히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었을 거에요. 폭력이나 협박이겠죠. 이렇게 생산수단을 빼앗긴 사건을 ‘시초 축적’이라 합니다.

 

시초 축적으로 생산수단을 빼앗긴 사람은 이제 스스로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굶어죽을 수는 없으니까, 생산수단이 있는 사람, 힘센 사람한테 빌붙어야겠죠. 옛날에는 그게 소작농이었고, 요즘엔 노동자, 또는 월급쟁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계급입니다. 생산수단이 있는 사람 – 부르주아, 생산수단을 뺏긴 사람 – 프롤레타리아.

 

2. 양극화

그런데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로 신분상승하긴 굉장히 어렵습니다. 맑스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봤죠. 그 이유를 알아볼까요. 좋아하는 이름 있으신가요? 좋아요. 노동자 찰스가 1시간을 일해서 창출해내는 가치가 5달러입니다. 또 이름을 하나 더 말해볼까요? 좋습니다. 그런데 사장, 자본가 데이비드가 찰스한테 주는 시급은 3달러죠. 찰스는 열심히 일하고도 2달러를 착취당한 거고, 데이비드는 가만히 앉아서 2달러를 벌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다보면 부르주아는 점점 부유해지고, 프롤레타리아는 점점 가난해집니다. 피라미드의 위층은 점점 줄어듭니다. 오래 못 가겠죠. 맑스는 원시사회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바뀌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자본주의의 멸망엔 일정한 단계가 있습니다.

 

3. 대공황

자본가들은 항상 이윤을 바라잖아요. 근데 인간이 한 시간에 햄버거 5개를 만들면 기계는 10개를 만듭니다. 게다가 인간들은 아프고, 월급도 줘야 되고, 툭하면 데모하고, 노동조합을 만듭니다. 자본가들은 기계가 훨씬 맘에 들겠죠.

 

그런데 기계는 받은 월급으로 아무것도 사지 않습니다. 기계에 투자한 돈이 사회 전체에 돌지 않는 거죠. 이렇게 사라져버리는 돈을 불변자본이라고 합니다. 불변자본이 커지면 굉장히 무서운 일이 일어납니다.

 

  1. 불변자본이 커지면 이윤율이 하락합니다.
  2. 이윤이 적으니까 조금 남기고 많이 팔자 – 과잉생산
  3. 투자해도 이득이 없으니까 투자를 안 해야지 – 투자 저하
  4. 이러다보면 시장이 수축하게 됩니다. 
  5. 안 팔리니까 가격을 내리자 – 상품가치 하락
  6. 그러다보면 기업들이 파산하고...
  7. 대공황!

 

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인가요! 그렇지만 맑스는 대공황도 결국 빅-플랜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4. 자본의 사회화 & 노동자 혁명

거의 모든 기업이 파산하는 공황 상태는 어떤 시기일까요? 자살률이 높은 시기? 폭락한 주식을 줍고 존버할 시기? 모두 맞지만, 맑스가 생각하기엔 공황은 공산주의가 만들어지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우선 이젠 한 사람이 회사를 차리긴 어려운 시대가 되었어요. 리스크도 크고, 돈도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주식회사가 만들어집니다. 돈이 없으니까 빌려야겠죠? 은행도 발달합니다. 자본을 가진 사람과 실제 자본의 이용자가 달라집니다. 주식회사는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조금씩 사서 나눠가지고 있는 거지, 사장이 독점하는 게 아니죠. 은행도 남이 예금한 돈을 내가 빌리면 남의 돈을 내가 쓰는 거죠. 이 현상을 자본의 사회화라고 합니다. 사회주의가 일어서기에 좋은 환경인 거죠.

(주식회사 - 은행의 발달 - 자본의 사회화)

 

게다가 공황 상태에선 이런 현실을 뒤엎자!는 노동자들도 많습니다. 자본의 사회화를 토대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키다 보면 혁명이 승리합니다. 지배층이 부르주아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거죠. 코뮌이나 소비에트 같은 기구를 세워서 프롤레타리아가 독재하는 나라를 세웁니다. 프롤레타리아가 또다른 계급이 되는 거죠. 이 체제가 안정되면 이제 계급이 없는, 무국가 무계급의 상태로 넘어가게 됩니다.

(노동자 혁명 - 프롤레타리아 독재 - 무국가 무계급)

 

조금 복잡한 과정이었는데, 맑스의 입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자본주의는 이렇게저렇게해서 무너지고, 계급도 없어진다. 이건 내가 열심히 연구해서 내린 결론이니까 믿어봐라." -맑스

 

5. 맑스의 예언 다시 정리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사회가 진행되다보면 계속 가다보면 부르주아는 점점 부유해지고, 프롤레타리아는 점점 가난해집니다. 피라미드의 위층은 점점 줄어듭니다. 오래 못 가겠죠. 기계화 – 과잉생산 – 시장수축 – 공황 – 자본의 사회화 – 혁명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미국의 대공황이나, 러시아의 혁명이 자본주의 붕괴의 한 과정이라고 본 거죠.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코뮌이나 소비에트를 세워서 프롤레타리아가 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상태가 되었다가, 결국엔 무계급 무자본의 시대로 넘어간다는 게 맑스의 예측이었습니다. (소련은 그렇게 되진 않았지만요...) 맑스의 입장에서 계급은 결국 붕괴할 존재였습니다.

 

현대 사회와의 접목

요즘 노동계의 문제가 뭐가 있나요? 비정규직 차별? 유리천장? 이런 문제들은 비정상적인 노동을 정상화하자는 거잖아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없애거나, 남성과 여성 차이의 임금격차를 평등하게 만들자는 건데요. 그런데 맑스의 입장에서 이런 운동들은 결국 아까 말한 착취의 정상화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노동의 복귀 – 정상적인 착취체제의 확립. 그래서 맑시즘의 입장에선 이런 눈앞의 과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노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노동은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가, 이런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면을 더 탐구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사회가 점점 프리해지고 있죠? 더이상 공산주의를 공부한다고 남산 지하에 잡혀가는 시대는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맑스를 분석한 책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사회이고 그에 따른 문제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맑스 연구가 활발한 게 아닐까 싶네요.

 

 

마치며 & 입문서 추천

저도 입문 상태지만, 맑스에 대해 쉽게 풀어놓은 책을 여러분께 조금 추천드릴게요. 우선 <맑스, 서울에 오다>는 현재 한국과 맑스를 관련시켜놓은 서적이고, <처음 읽는 독일 철학>은 맑스 말고도 하버마스, 하이데거, 벤야민 같은 철학자들을 간단하게 요약해놓은 책인데, 맑스 부분은 되게 재밌게 서술되어있어요. 이 책은 실제 강의를 그대로 책으로 옮겨놓은 거라서 수업을 듣 듯이 필기하시면서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메모해두고 읽어보시구요.

 

맑스가 보기에 현대 한국의 날씨는 정말 맑을까요? 맑스 본인만이 알 일입니다. 질문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적어주시면 아는 선에서 답변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참고서적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 철학아카데미 지음, 동녘(2013). [교보문고 링크]

<마르크스, 서울에 오다>, 박홍순 지음, 탐(2014). [교보문고 링크]

 

 

* 맑스 합성사진의 맑스는 위키미디어 커먼즈(commons.wikimedia.org/wiki/File:Karl_Marx_monochromatic.svg)의 자료를, 하늘 사진은 unsplash의 사진을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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