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28 / Stayhome 생활기, 생산성에 관한 푸념

by 누에고치 2020. 4. 20.

#1 떨어진 생산성

최근에 블로그에 '제대로 된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신 분들이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짧고 단순한 정보성 글 이외에 최근에 공들여 쓴 글은 소련영화 리뷰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2020/04/16 - [러시아 문화생활] #18 / 소련영화 리뷰: 인형 (1988)

 

4월 내내 알찬 글이라고 할 만한 포스팅은 하바롭스크 여행기와 유학일기 3편, 장학금 관련 글과 영화리뷰까지 6편이네요. 방안에서만 생활한 지 한 달째, 급격히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3분만에 썼던 분량을 지금은 6분은 걸려야 쓰는 것 같아요.

 

이유가 무엇일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첫째로는 밖에를 못 나가니까 새로운 일이 없어서 못 쓰는 것이기도 하고, 둘째로는 블로그를 재개한 지 두달 쯤 지나자 처음만큼의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셋째로는 약해진 체력으로 자연스레 집중력이랑 추진력이 떨어져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안 그래도 이관개방증 때문에 운동을 조심하게 되서 활동량이 떨어졌는데, 이제 아예 밖에 나가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되어버리니 소모하는 칼로리가 굉장히 줄었어요.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밖에 나간 3월 19일을 기점으로 (Apple Health 기준) 6000보에서 2000보로 1/3까지 줄어들었습니다.

 

#2 Stay Home

그래도 방 안에서 있으면서 소소하게 살아나가는 것도 나름의 재미인 것 같아요. 20년 후에는 재밌는 추억이 될 것 같은 느낌. "내가 학부 다닐 때는 아카뎀고로도크라고 대덕연구단지보다 더 외진 곳에 갔는데 말이야~ 가서 한달쯤 있으니까 말도 안되는 전염병이 퍼져서 모스크바에서는 하루에 천 명씩 확진자가 나오고~ 무서워서 하루종일 방 안에만 있었지~" 적어놓고 보니까 전쟁의 광풍을 피하려고 다락방에 숨어있었다는 할아버지들 말씀이 오버랩되네요.

 

아카뎀고로도크는 러시아 치고는 물가가 굉장히 비쌉니다. 한국에 비해서 러시아 물가가 싸다는 걸 거의 체감하지 못하는 동네랄까. 일요일마다 일주일치 식량을 사 오는데, 토마토든 귤이든 kg당 가격이 한국보다 드라마틱하게 싸진 않더라구요. 보통 돈 아끼려는 유학생들은 바로 앞 떼쩨ТЦ보다는 조금 떨어진 븨스트로놈Быстроном까지 걸어가거나 작정하고 오비강 좌변에 있는 메가Мега, 아샨Ашан까지 가는 것 같아요. (전통적인 시내는 강 우변임)

 

그렇지만 저는 멀리 나가기가 왠지 귀찮고 무서워서 그냥 바로 앞 마트에 다니고 있어요. 일요일만 나가는 걸 원칙으로 하다보니 금-토요일은 먹을 게 떨어져서 하루종일 라면만 먹은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2주동안 토요금욕생활(?)을 경험하다보니 어제는 오래 가는 식품들, 까샤Каша(오트밀죽)랑 비스킷류를 사왔어요. 근데 이것도 양으로 보건대 금요일쯤이면 다 떨어질 것 같아서, 금요일과 토요일을 카샤와 라면으로 연명하지 않으려면 수요일쯤 장을 봐와야 하겠네요.

 

식생활은 매우 단순해요.

  • 일단 점심으로는 1층 부펫에서 파는 데워먹는 패키지를 사 먹습니다.
    • 고기(튀김류 또는 바싹 삶아놓은 닭/돼지/소) + 가니어(밥/감자퓨레/마카로니)
  • 아침, 저녁, 그리고 간식으로는 아래처럼 먹습니다.
  • 고기
    • 돼지목살(kg당 399р): 1.5kg 정도 사두고 매일 저녁 구워먹기
  • 탄수화물
    • 빵 - 목요일 정도 되면 곰팡이가 펴버려서 3-4일분만 사두는 편
    • 컵라면 및 봉지라면류 - 도시락, 신라면
    • 커피과자류, 비스킷 - 평소에 부족한 탄수화물 보충
    • 귀리죽(까샤)
    • 한국에서 온 구호물품(?) -연양갱, 과자
  • 과채류
    • 물로만 씻어서 먹을 수 있는 과채류: 귤, 토마토, 사과, 오이, 냉동딸기
  • 음료
    • 이케아에서 산 분쇄원두 (공교롭게도 카페인이 안 받는 시기라서 다 버리게 생김)
    • 녹차, 홍차, 치커리
    • 미숫가루 - 배고픈데 빵 먹기엔 부담스러울 때
    • 달달하게 타먹을 꿀, 각설탕

 

지금 여기서는 건물 앞에 나가는 것 정도는 그냥 출입증 찍고 나가도 딱히 잡지 않아요. 원칙적으로는 산책나갈 때도 출입기록을 다 적어야 하지만 말이죠. 러시아에서 엄격한 제한이 적용된다지만 모스크바만 그렇고, 노보시비르스크에선 기관/상점의 업무가 대폭 축소됐을 뿐, 일상마저 제한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외국인들, 특히 동양인들과 아랍인들이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다니고, 정작 러시아인들은 일상적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사실 러시아가 좀 그래요. 서류상으로는 안되는 게 굉장히 많지만 공무원들이 자기 일을 엄격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웬만하면 설렁설렁 넘어갈 수 있는 느낌이랄까. 꼭 방학계획을 일일히 세워두고 지키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같아서 정겨워요.

 

오늘 글은 이만치 쓰려고 해요. 글 읽어주시는 여러분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밀린 글들이 더 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드네요. 그래도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짧고 내용없는 글이라도 꾸준히 쓰려고 해요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