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에세이들에 비해 졸작에 가까운 것 같으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개의 심장』의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의 가장 유명한 작품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이 블로그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와 벌』에 이어 2020년에 작성한 또다른 에세이를 블로그에 공개해둡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판타지 속의 체제비판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고 쓰는 에세이[1]
미하일 불가코프의 장편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가 짧은 생애동안 남긴 작품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로 평가된다. 소설에서 불가코프는 고대 로마 치하의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예수의 이야기와 현대 소련에서 일어나는 판타지풍의 사건을 병치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 점에서, 소설은 그의 전작 『개의 심장』에서 길거리의 개를 수술하여 인간으로 만든다는 판타지적 세계관 하에서 소비에트 체제를 비판한 것과 마찬가지로, 역시 현실적인 소련 사회가 아니라 낯선 세계를 그림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더욱 현재의 사회구조를 비틀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소설의 첫 장면을 시작하는 것은 주인공 격인 ‘거장’이 아니라, 문예단체 마솔리트의 회원인 두 문학가이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무고한 마솔리트의 회장 베를리오즈는 악마가 예측한 그대로 전차에 치여 죽고, 또다른 문학가 베즈돔니는 이 죽음이 악마의 짓이라고 믿고 그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온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이내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게 된다. 이 첫 장은 소설의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첫째로, 베를리오즈와 베즈돔니가 변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마솔리트 문학가들의 대화와 고인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반응에서이다. 인민의 시각에서 현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끝없이 개선시키기 위한 압력을 넣어야 할 문학가들은 없고, 소비에트 체제를 찬양하며 안락한 마솔리트 지부에 앉아서 다음 휴가지로 어느 곳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문학가들의 모습은, 소비에트 문학노선과 다른 길을 걸어 사실상 ‘거장’과 같은 환경 속에서 글을 쓰다가 요절한 불가코프의 입장에서 제도권 문학가들에 대한 환멸을 보여준다. 더구나 베를리오즈가 죽은 후 그의 생전 모습을 진심으로 추모하기보다는, 베를리오즈가 남긴 유산과 이로 인한 변동 속에서 이익을 잡아보려는 친척 등의 모습은 소비에트 사회가 전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지 않으며, 오히려 특정인들에게 치우칠 수 있는 경직된 구조와 엘리트주의를 버리지 못했음을 나타내준다.
둘째로, 이는 악마의 지위를 보여줌과 동시에 내용의 흥미를 돋우기 위하여 고안한 장치로, 첫 부분에서 이들은 언뜻 톨스토이의 우화에서 등장하는 이들과 같은 전통적인 악마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악마 ‘볼란드’와 그의 하수인들은 이 작품에서 상당히 다각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악마의 다각도성은 거장과 악마의 관계로부터 나타난다.
베즈돔니가 정신병원에 들어온 후, 그는 옆방의 환자인 ‘거장’을 만난다. 거장은 위에서 언급한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를 다룬 이야기를 쓴 소설가였으나, 그의 소설은 이미 소비에트 체제를 옹호하는 기성 문단의 호응을 받지 못한 채로 묻혀버린다. 그는 유부녀인 연인 마르가리타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혐오로 마르가리타에게 알리지 않고 홀연히 정신병원으로 도망친다.
흑마술 공연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볼란드 일행은 악마답게 포위망을 유유히 뚫고, 한순간에 연인을 잃은 마르가리타에게 접근해온다. 그들은 마르가리타에게 무도회의 안주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며, 그 대가로 거장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베즈돔니와 베를리오즈에게 보여준 무자비한 모습과는 다르게 악마는 마르가리타와 거장에게 친절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며, 일체의 속임수를 쓰지 않고 거장을 약속한대로 마르가리타에게 돌려준다.
뿐만 아니라 작중 거장이 고민하던 각종 문제가 소비에트 정권이나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볼란드 (그리고 그에게 협조한 마르가리타)에 의해 처리된다는 것도 볼란드의 작중 역할을 보여준다. 익명의 서평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 ‘거장’이 고민하는 삶의 실존의 문제, 철학적 고민들이 악마인 ‘볼란드’에 의해서 해결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2]
전혀 생각치 못했던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반 베즈돔니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준래의 논문[3]이 있었는데, 베즈돔니는 작품 초반에 등장해 베를리오즈의 죽음을 목격하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자이다. 필자는 책을 읽으며 베즈돔니는 그저 거장과 마르가리타, 볼란드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에 집어넣은 조연격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으나, 조준래는 논문에서 소설의 처음과 끝에 이반이 등장한다는 점과 이반의 꿈이 중시된다는 점을 주요한 논점으로 잡고 있다. 소비에트 리얼리즘만이 진실된 예술의 길로 강제되었던 소비에트 시대에 창조적 비전은 억압되었으며, 해석에 따라 이 소설의 상당부분, 심지어 소설 전체가 이반의 꿈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그의 주장대로 소설과 이반의 꿈에 큰 관련성이 없더라도, “불가꼬프는 창조적 비전으로서의 꿈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창작이란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인 과정이며, 창작은 어떤 논리나 외적인 통제에 의해서도 제한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4] 이는 또한 이반이 ‘이성적’으로 악마의 존재를 설명하려 한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고 그가 되려 정신병자로 몰렸다는 점에서 볼 때, 이성과 비이성의 대비를 불가코프가 어느정도 의도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현실과 가상을 오묘히 혼합하여 현재의 사회를 비판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가장 주요하게는 악마의 등장이라는 판타지성 요소를 통해 나타난다. 이러한 요소를 통해 작가는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직된 소비에트 사회를 비꼼과 동시에, 악마와 역사적 예수를 섞어 흥미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1] 읽은 판본은 열린책들의 판본이다. 『거장과 마르가리따(상) 』,『거장과 마르가리따(하』), 미하일 불가코프,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 2009.
[2] “거장과 마르가리타”, 성균관대학교 오거서, https://book.skku.edu/거장과-마르가리타/, 2013-11-18, 2020-06-07 접속함.
[3] 조준래, 「「거장과 마르가리따」에 나타난 작가와 주인공의 문제」, 『세계문학비교연구』, 12권 0호(2005), 세계문학비교학회, pp. 133-135 참조.
[4] 위의 논문, p.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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