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러시아 문고판 <죄와 벌>을 구입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5년 전인 2020년 8월 작성한 독후감을 블로그에 공유합니다.

죄와 벌: 치밀히 묘사된 심경의 변화
표토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쓰는 에세이[1]
표토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1860년대의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2]는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골방에서 살아가는 청년으로, 어느날 그는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고 탐욕스럽다고 생각했던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죽이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우발적으로 그는 계획에 없던 노파의 여동생도 죽이게 되고, 그 죄책감으로 얻은 마음의 병이 번져 열병을 앓게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도스토옙스키가 설정한 주인공은 결코 정상적인 사고관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의 범행동기는 노파에게 받은 직접적 구박으로 인한 복수보다는 스스로가 비범인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그는 스스로 털어놓는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병을 얻게 된 것도 노파의 여동생을 죽인 죄책감에 더하여, 스스로의 사상에 대한 자가당착적 모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민음사판의 역자 김연경에 의하면[3] 『죄와 벌』에서 주요하게 생각되는 개념은 ‘초인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는 만들어진 조어이며 작품 내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조어를 이용하여 개념을 사용한다고 한다. 더불어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 그 자체조차 지극히 평범한 것이였으므로, 즉 그는 스스로를 비범한 사람으로 여기고 싶었으나 지극히 평범한 사상의 소유자로서 그 논리에 모순이 생겨버린 것이다.
결국 범죄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완전범죄로 라스콜리니코프는 체포되지 않았지만, 냉철한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논문 속의 악인 처단에 관련된 내용을 읽고 그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초대를 가장한 심문을 통해 그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한편 주인공은 우연히 매춘부 소냐를 만나게 된다. 소냐는 실직한 관리인 아버지와 폐병에 걸린 새어머니, 그리고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매춘을 하는 인물이다. 소냐는 이러한 삶을 받아들이고 세상 모든 것에 신의 뜻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인물로, 매일매일을 꿋꿋이 살아나가는 인물이다. 톨스토이에게 논리적 모순에 빠진 귀족 계급에게 탈출구를 제공해주는 역할로 농민이 있었다면, 도스토옙스키엔 하층민 소냐가 있었던 셈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학업은 중단하였으나 논문을 쓸 정도로 사상적으로 더욱 복잡한 수준의 체계를 정립할 수 있는 인물인 반면 소냐는 어리고 교육받지 못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배경을 보았을 때 전통적으로 소냐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의지하는 구도가 등장할 수 있으나 소설에선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 점은 도스토옙스키의 생활을 연상케 하는데, 그는 수많은 소설로 높은 수준의 사상을 정립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 문학, 철학계의 기준을 마련한 사람이었으나, 일상생활의 수준에서는 평생 도박중독과 간질 등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려웠고 항상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의 타이피스트였다가 아내가 된 안나는 25살 어렸으나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도박벽과 계획적이지 못한 경제생활을 두고 모든 경제권을 본인에게 귀속하고 관리하여, 그 결과 도스토옙스키는 50대로 접어들 무렵인 1870년대 초중반, 『미성년』을 발표할 즈음부턴 경제적, 심리적으로 안정된 시기를 갖게 된다.[4] [5]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와의 상의를 통해 자수하여 시베리아에서 복역하게 된다. 자수를 결심하는 과정에서도, 심지어 복역 중에도 그는 여전히 마음 속의 고뇌를 간직하고 있으나, 소설의 최후반부에 들어 소냐는 그의 사랑을 느끼며 ‘모든 것을 이해한다’. 정선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소설 후반부에 들어 병에 들고 환각 속에서 세계적인 종말과 신적인 존재를 만난 것을 언급하며, 이를 두고 “라스콜리니코프의 개심에는 고통과 희생이 따라야 했다”고 평한다.[6] 소설의 끝까지 라스콜리니코프는 결코 자신의 죄를 직접적으로 뉘우치지 않으며, 이러한 모호한 결말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의 완전한 이해를 방해하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7] 그러나 이 모호성은 소설을 완전히 닫지 않고, 마지막 문장이 암시하듯 주인공의 새로운 미래를 암시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 병들어 지친 창백한 얼굴에는 새로운 미래의, 새로운 생활에의 완전한 부활의 아침이 이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8]
결론적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뒤틀린 사상을 가지고 있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순수한 영혼의 소냐를 만나 종교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며, 모두 서술하진 못했으나 세밀한 인물관계의 설정과 치밀한 감정묘사를 통해 라스콜리니코프의 심경변화 과정을 매우 자세히 그려놓았다. 이 소설에선 도스토옙스키의 사상뿐 아니라 그의 삶도 상당부분 반영되어있다는 점, 그리고 모호한 에필로그로 인해 소설의 메시지 유추 또한 어렵다는 점을 본 글에서 확인해보았다.
[1] 읽은 판본은 열린책들의 판본이다. 『죄와 벌 (상)』, 『죄와 벌 (하)』, 표토르 도스토옙스키,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 2009.
[2] 그의 이름은 Раскол(분열)에서 지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살인을 통해 스스로와의 단절됨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상봉, “죄와 벌, 그리고 성서”, 가톨릭일꾼,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075, 2020-06-07 확인
[3] "죄와 벌 1", 민음사, minumsa.minumsa.com/book/2598/, 2020-06-07 확인
[4] 정석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 도박꾼을 대문호로 만든 구원의 여성”,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3060748961, 2020-06-07 확인
[5] 이현우는 그의 인터넷 기고문에서 마르크 슬로님의 “Three Loves of Dostoevsky”를 인용하며, 도스토옙스키가 50세 무렵으로 접어들면서 가정생활에 조금 더 안정적으로 집중했다고 서술한다. 이 시기의 도스토옙스키는 청소에 집착하거나 차를 끓이는 방식을 고집하는 등 여전히 결벽증적인 면모를 보이나, 이전의 자제가 안되던 듯한 생활에 비해서는 많이 안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현우, “도스토예프스키의 세 여인”, 로쟈의 저공비행, https://blog.aladin.co.kr/mramor/1120144, 2029-06-07 확인
[6] 정선태, 『『죄와 벌』 또는 선악의 경계에 선 자의 비극 -도스또예프스키 소설 연구 노트 1-』, 어문학논총, 제26권 제0호(2007), 국민대학교 어문학연구소, pp. 109.
[7] 이효선, “죄와 벌을 읽고”, 브런치, https://brunch.co.kr/@hyoseonlee/174, 2020-06-07 확인.
[8] 표토르 도스토옙스키, 앞의 책(하), p.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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