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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여행기

하바롭스크 여행기: #6 역사박물관과 프라오브라젠스키 성당

by 누에고치 2021. 7. 21.

3일차 (2019/6/29 금)

12:00+ 출발 - 35 - 몰 - 역사박물관 - 1л - 성모승천성당 - 강변 - 미술관 - 기념품점 - (피잣집 고민) - 도쿄 일식 - 4 - 20:30+ 숙소 - 괴상한 파티 - 늦은 잠

 

어제의 교훈 덕에, 이 날은 각자 동선을 짜서 따로 다니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현명한 선택이었고, 앞으로 친구와 여행을 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무계획이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거야'라는 사람과 가게 된다면 그런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 당장 나부터가 상당히 그런 방식에 근접한 여행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밤늦게까지 계속된 파티의 여파로 기상시간이 더욱 늦어졌다. 이젠 아점도 아니고 점심이 첫 끼가 된 셈이었다. 원래는 어제와 비슷하게 숙소 근처 스딸로바야에서 먹고 버스를 타고 출발하기로 했지만, 타려고 했던 35번 버스가 바로 눈앞에 있는 바람에 충동적으로 잡아탔다.

 

첫 목적지는 어제 가지 못했던 역사박물관이었다. 버스가 한 번에 가지 않아서 중간에 내려서 걸어갔어야 했는데, 마침 내린 지점이 대형 몰 옆이라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외부에 있는 버거킹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지 않았다. (이날 저녁 민박집 한국인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맛이 없다고 한다. 다만 정확히 해당 지점을 가르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몰에 식당이 있을 것 같아, 들어가서 한 층씩 둘러보면서 5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갈 땐 참 길었는데, 내려올 땐 짧은 길이었다. (아마 초행길과 아닌 길의 차이였을 것이다. 여행 내내 체감이 되었다.) 5층이 푸드코트였는데, 한식도 있어서 신기했지만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한식을 먹고 싶진 않았기에, 터키식 스딸로바야 식당에서 닭볶음밥과 샐러드를 시켜서 먹었다. 190루블. 여유롭게 설탕 넣은 아메리카노도 주문했다. 110루블. 언제나 그렇지만 돈을 내는 러시아어는 어렵지 않다. 3년 전 모스크바에서 커피를 주문하면서 메뉴도 못 읽어서 쩔쩔 매던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한식', '쌀'이라는 간판과, 'O' 표기를 '오'로 해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어제 걸었던 길과 같은 길을 걸어서 역사 박물관에 들어갔다. 어제 얘기해주신 것처럼 정상적으로 열려 있었다. 외국 관광객 티가 나다보니 안내원 분께서 영어로 말을 걸어주시긴 했는데, 딱 입구에 있는 분만 영어를 할 줄 아는 것 같다. 입장료는 250루블.

 

하바롭스크 역사박물관은 하바롭스크의 모든 역사 관련 물품들을 전시해놓은 공간으로, Tripadvisor나 각종 여행책자에서 빠지지 않는 하바롭스크의 명소이기도 하고, 특히 나처럼 여행 가서 박물관 둘러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면 좋을 곳이다.

 

초기 러시아인 정착과정, 선주민 문화부터 소련과 러시아연방 시대까지 볼 수 있게 구성되어있었다.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마침 한 팀 큐레이션이 러시아어로 진행되고 있긴 했지만,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냥 혼자서 관람했다. 유리 가가린 관련 전시, 소련 시절 화폐, 1차-2차 대전 무기를 유의깊게 봤었고, 100년쯤 된 각종 문서나 발간물이 온전히 다 보관되어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 같다.

 

정작 한국에서는 박물관을 잘 안 가는 편인데, 왜 러시아만 가면 박물관에 가게 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가끔씩 서계시는 안내원 분들께(대부분 아주머니/할머니) 전시 물품에 관해 궁금한 점을 여쭤보는데, 이때도 몇 가지를 물어봤었다. 러시아어로 아무에게나 말 붙일 친화성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그나마 박물관처럼 뭔가 궁금해지는 것이 많이 생기는 곳에 와서나야 몇 마디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유리 가가린과 하바롭스크의 관계라든지, 전시된 소련 시절의 물건이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설명해주셨는데, 정말 파편적인 단어만 알아들었던 것 같다. 언어 초보자에게는 겨우 문장을 머릿속에서 닦아서 뭔가를 물어보는 것은 가능해도, 그 답변을 알아듣는다는 것이 힘든 일이다.

 

[좌] 어제 걸었던 바로 그 길. [우] 역사박물관 입구.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패스를 구입하지 않아서, 아쉽게 추가적인 사진은 없다.

 

박물관 앞의 정류장에서 1л번 버스를 타면 다시 강변 쪽으로 갈 수 있다. 1л번은 왠지 시내구간에서 제일 자주 보이는 버스 같다. 처음에는 바로 강변으로 가서 산책을 하려고 했지만, 차창 밖으로 문득 보였던 성당 첨탑이 너무 예뻐서 성당 앞 광장에서 내렸다. 하바롭스크에 관광지라고 할 만한 성당은 두 개인데, 성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Спасо-Преображенский собор과 우스펜스키 성당(성모승천사원)Градо-Хабаровский Успенский собор이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 정측면 사진.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명예 광장(Площадь Славы)과 함께 있다. 50mm로는 전체를 사진기에 담기 어려웠을 정도로 컸다. 

 

여담으로 광장에서 내렸을 때 꼬맹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할아버지가 비둘기를 품에 안고 있고, 손자 손녀들이 꺄르륵거리는 걸 목격했다. 그 모습을 찍는 건 실례일 것 같아 사진기에 담진 못했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서는 이 여행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졸지에 인간에게 잡힌 비둘기의 심정이 어땠을지, 그리고 할아버지 웃옷에 다 묻었을 비둘기의 세균이 아름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은 접어두도록 하자.

 

성당은 지하층도 있고 지상층도 있었는데, 어떤 쪽이 실제로 더 많이 사용되는 예배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상층이 상대적으로 웅장했다. 아무래도 신자가 아닌 관광객의 입장에서 들르는 정교회 성당은 갈 때마다 뭔가 뻘줌하다. 베일 쓴 러시아 여자들과 신실한 눈빛으로 들어온 남자들 사이에서 이상한 동양인이 서서 기도조차 안 하고 있으니... 다음에 러시아에 유학을 가면 꼭 정교회 성당 입문 절차를 거쳐서 뻘쭘하지 않은 기도를 해보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기독교라서 그런지, 기도를 하는 관광객도 있었다. 아마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한바퀴 돌고 오니 비슷한 옷을 입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하나 둘 셋 하면서 점프샷을 찍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려가서 무명용사의 묘 (꺼지지 않는 불)을 봤다. 지나가면서 엿들은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크림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이 새로 추가되었다고 한다.

 

성당을 떠난 뒤의 여행기는 다음 7편에 이어가기로 한다.

 

2018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톡 여행기 전체 목록

  1. 2020.04.04 - 하바롭스크 여행기: #1 헤맴의 연속
  2. 2021.01.17 - 하바롭스크 여행기: #2 또 시작된 헤맴
  3. 2021.01.18 - 하바롭스크 여행기: #3 갈등과 깨달음
  4. 2021.01.27 - 하바롭스크 여행기: #4 비 내리는 하바롭스크
  5. 2021.07.19 - 하바롭스크 여행기: #5 이틀차 저녁식사, 중심부 산책
  6. 2021.07.21 - 하바롭스크 여행기: #6 역사박물관과 프라오브라젠스키 성당
  7. 2021.07.23 - 하바롭스크 여행기: #7 홀로 산책하기 좋은 도시... 그리고 새벽의 파티.
  8. 2021.07.25 - 하바롭스크 여행기: #8 조지아 음식! 삼사! 하바롭스크 마지막 날.
  9. 2021.07.27 - 하바롭스크 여행기 #9: 친구와 단둘이 러시아 횡단열차 타기 (하바롭스크 - 블라디보스토크)
  10. 2021.08.01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0: 구경, 구경, 구경
  11. 2021.08.05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1: 장대비 속의 도보여행
  12. 2021.08.05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2: 시장 구경, 국립박물관, 밤 산책
  13. 2021.08.07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3: 연재 후기 (feat. 마지막 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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