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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여행기

하바롭스크 여행기: #3 갈등과 깨달음

by 누에고치 2021. 1. 18.

2일차 (2019/2/28 목)

11:30- 나섬 - 아점 - 산책 - (아이스크림) - 시장 - (비옴) - 걷기 - 레닌광장 - (비옴) - 토니모리 - 디나모 공원 - 몰 - 역사박물관(닫힘) - 85п - 카바촉 - 걷기 - 콤소몰 광장 - (초콜릿) - 듀엣 - 막심택시 - 21:40+ 귀국

 

문제 없었던 아침

어제 숙소까지 찾아오느라 고생해서 그런지 느즈막한 시간인 11시 반쯤 일어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시간대는 나에게 '여행 가서 알람을 안 맞추면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친구가 구글 맵으로 조금 걸으면 러시아식 카페테리아인 스딸로바야가 있다길래 가보기로 했다. 리뷰상으로 사진도 꽤 깔끔하고 그냥 저렴하게 아침을 먹기 좋아보였다. 찾아가보니 닫은 것 같은 비주얼에 열려있는 문. 지극히 러시아적인 스딸로바야였다. 보르쉬랑 밥, 닭다리, 샐러드를 담으니 255루블(약 5,000원)이었다. 굉장히 풍족하게 아점을 먹고 만족스럽게 숙소를 나왔다.

 

숙소 주변은 비포장 도로였다. 이미 전날 새벽 비가 와서 물이 고인 모습.

갈등의 시작

여행을 갈 때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는 사람은 혼자 가는 것이 좋다. 함께 가더라도 숙박과 항공권 정도만 같이 잡고, 동선은 각자 짜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자유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식당에서 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비가 살며시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우산을 가져오자고 했고, 나는 금방 그칠 것 같으니 일단 가보자고 했다. (특이하게도 나중에는 친구는 맞을 만하다는 입장으로, 나는 우산을 사서 가자는 입장으로 바뀌게 된다.) 숙소까지 다시 돌아가기에는 애매한 거리긴 했다. 그래서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 우선 길을 나섰다.

 

또 의견이 갈렸다. 시내까지 나는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고, 친구는 걸어가자고 했다. 지도를 보니 가깝진 않지만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어가는 게 크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아 이번에는 친구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하바롭스크 역 전경.

그렇게 걷다보니 하바롭스크의 시내라고 할 만한 부분 중 가장 북단인 하바롭스크 역에 도착했다. 어딜 가든 느끼는 것이지만 러시아의 철도역들은 참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 하나는 마음에 든다. 구 서울역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거의 유사한 것 같다.

 

역 앞의 불바르(길게 뻗은 녹지)로 나왔다. 이 불바르에 서보면 하바롭스크가 쭉 뻗은 계획도시라는 것이 실감되는데, 사진으로 담기지 않을 정도로 저 멀리까지 일자로 뻗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녹지공간은 서울에는 잘 없는 형식인데, 러시아 지방도시에는 매우 흔한 것 같다.

 

불바르를 걷다가 소광장에서 아이스크림 매대를 발견했다. 150루블이었는데,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별로 먹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가자고 했지만 친구는 사줄 테니까 먹으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하던 때라, (학부 1학년 첫 방학이었다) 4개를 주는 줄 알았는데 2개를 줘서 당황했던 것 같다. 써진 글을 읽었을 때는 150루블에 맛 2개였던 것 같은데, 정확한 사진이 남아있질 않아서 옳게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설마 750원을 아끼려고 아이스크림을 절반으로 주진 않았겠지, 아마 내 해석이 잘못됐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하바롭스크 시장

꽃과 과일을 파는 쪽의 매대.

불바르를 통해 조금 걸으면 하바롭스크 중앙 시장에 갈 수 있다. 하바롭스크를 가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일단 시장이라는 장소가 여행의 주 목적인 색다른 문화 체험과 구매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한 대형 시장이라 취급하는 물건도 다양하고, 실내화된 부분에는 마트와 몰도 입점해있고 간단한 식당가도 있기 떄문이다.

 

시장 곳곳 풍경.

이때는 하바롭스크에서 며칠 있지 않아 시장을 많이 방문하진 않았는데, 친구는 이 여행에서만 3번 이상 시장을 방문했다고 했다. 사실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무색하게도 이듬해 혼자 여행을 갔을 때는 나도 시장을 3-4번 들렀던 것 같다.

 

굉장히 재밌는 것들이 많은 시장인데 2019년 여행에서는 혼자였고, 시간도 여유로웠고, 러시아어 실력도 여유로워서 이것저것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이때는 많이 둘러보진 못했던 것 같다.

 

시장에서는 꿀이랑 초콜릿을 샀다. 꿀은 여러가지 추출기름과 함께 팔고 있었고 굉장히 종류가 많았는데, 아마 꽃꿀Цветочный을 샀던 것 같다. 꿀은 200루블(4000원), 초콜릿은 70루블(1400원). [위 사진모음 1번 사진]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모습.

시장에서 여러가지 둘러보는 동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산도 사지 못했고, 우비도 없었지만 기다린다고 그칠 것 같지 않아 우선 시내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만 오지 않았더라도 갈등이 상당히 줄고 원만한 여행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우리는 비를 따라다녔고(비가 우리를 따라다녔고?) 블라디보스톡에 이르기까지 계속 날씨는 우중충했다. 남하하는 비구름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간 것이 아니었나 싶다.


2018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톡 여행기 전체 목록

  1. 2020.04.04 - 하바롭스크 여행기: #1 헤맴의 연속
  2. 2021.01.17 - 하바롭스크 여행기: #2 또 시작된 헤맴
  3. 2021.01.18 - 하바롭스크 여행기: #3 갈등과 깨달음
  4. 2021.01.27 - 하바롭스크 여행기: #4 비 내리는 하바롭스크
  5. 2021.07.19 - 하바롭스크 여행기: #5 이틀차 저녁식사, 중심부 산책
  6. 2021.07.21 - 하바롭스크 여행기: #6 역사박물관과 프라오브라젠스키 성당
  7. 2021.07.23 - 하바롭스크 여행기: #7 홀로 산책하기 좋은 도시... 그리고 새벽의 파티.
  8. 2021.07.25 - 하바롭스크 여행기: #8 조지아 음식! 삼사! 하바롭스크 마지막 날.
  9. 2021.07.27 - 하바롭스크 여행기 #9: 친구와 단둘이 러시아 횡단열차 타기 (하바롭스크 - 블라디보스토크)
  10. 2021.08.01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0: 구경, 구경, 구경
  11. 2021.08.05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1: 장대비 속의 도보여행
  12. 2021.08.05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2: 시장 구경, 국립박물관, 밤 산책
  13. 2021.08.07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3: 연재 후기 (feat. 마지막 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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