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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여행기

하바롭스크 여행기: #1 헤맴의 연속

by 누에고치 2020. 4. 4.

러시아: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2인 여행

2018.06.27 - 2018.07.04

밥은 말아먹어야 제맛

항상 공항을 떠날 때 양식을 먹어본 적은 없다. 한식이나 일식을 먹었던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음식을 잘 안 가리고, 다들 불평하던 급식도 맛있게 먹었고, 어느 나라 음식에도 잘 적응한다고 해도, 의례적으로 공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뜨근한 국물과 함께 하는 밥 한 공기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무의식적인 선택이었다. 그나마 제일 든든하면서도 속이 편해서일까.

 

순두부찌개. 사실 지금 같았으면 돈까스를 시켰을 텐데, 이때는 아직 튀김요리에 맛을 들이기 전이다.

 

그래서 이 날도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비록 백화점 푸드코트보다도 비싸고 미원 맛이 듬뿍 나는 찌개지만, 그래도 뜨끈하게 잘 먹었다는 느낌이 너무 좋다. 그렇다.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신성한 것이다. 라멘에도, 똠얌에도 밥을 말아먹어야 한다. 내 단골집에서 즐겨먹는 음식도 그렇다. 새우튀김이 하나 곁들여 나오는 사누키우동에, 돈카츠를 추가해서 흰밥과 같이 말아먹는 나만의 메뉴(?) '에비사누키우동돈카츠나베'. 이번 생에 러시아로 이주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쌀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일 것이다.

 

비행사는 아에로플로트(오로라).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순환여행이라는 점 때문에 꽤 이른 예매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꽤나 높은 편이었다. S7 항공이나 제주항공, 하다못해 대한항공으로라도 블라디보스토크 왕복표를 사면 절반 이하로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생각보다 아에로플로트는 표가 싸지 않다. 당시엔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어떤지 몰랐기 때문에 한 번만 타는 것으로 정해 하바롭스크 IN - 블라디보스토크 OUT이라는 시간표를 짰다.

 

미숙했던 첫 여행

지금에야 나아졌지만, 부모님 없이 떠나는 첫 자유여행이었던 이 여행은 참 미숙한 면이 많았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한인민박과의 컨택. 하바롭스크 공항에 도착한 나는 "국내선 터미널에 심카드 파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믿고 친구와 함께 공항 주변을 한참 돌았지만, 찾지 못했다. 하다못해 직원에게 물어보니 여긴 없다고 한다. "나한테 동전이 조금 있으니까 버스를 타고 시내를 가서 휴대폰부터 개통하자"는 생각을 해낸 건 공항을 두 바퀴 정도 돌고 난 후.*

 

* 여행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유심칩에 관한 것은 하바롭스크 공항에서 국내선 터미널에서 구할 수 있다는 2018년 기준의 여행기들이 있습니다. 국내선 터미널에 비라인이 있다고도 하고, 안내데스크에서 살 수 있다고도 합니다.

 

국내선 터미널을 도저히 못 찾으시겠다거나 유심 파는 곳을 못 찾는 경우, 민박 등에 어떻게든 연락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주변 사람들 전화라도 빌려서 쓰고, 그렇게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선 100루블짜리를 준비해 가서 버스를 탄 뒤, 시내로 가서 사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의 세 수기를 참고해주세요. 국내선 터미널로 넘어가셔서 구매하시거나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구매하신 분들입니다.

 

심지어 이 때 나는 아이패드까지 부숴먹게 된다. 가방이 열린 걸 모른 채 캐리어에 걸어놨다가 캐리어가 넘어져버려서, 라는 하찮은 이유였다. 당시 아이패드 프로 12.9는 가장 비싼 라인업이었고, 리퍼 비용은 78만 원이었다. 여행자보험은 비싸게 들었지만, 보장되는 휴대품 손해는 고작 20만 원이었다. 지금 내가 한 달에 쓸데없는 돈을 9.99$씩 내면서도 애플케어를 들어놓는 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 (이후의 일이지만, 화면이 다 갈리고도 기적적으로 아이패드의 액정은 멀쩡했다. 수리를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나는, 2019년 초에야 화면을 수리하게 된다.)

 

사실 러시아엔 두번째 도착이었다. 모스크바에 3박 4일로 아빠랑 갔던 여행은 지금도 참 좋은 추억이다. 한참 블로그를 쉬던 시기의 여행이라, 나중에 글로 풀어내야지. 그렇지만 처음 밟은 하바롭스크의 땅은 전혀 모스크바와는 달랐다. 비에 젖어 질척이는 비포장된 땅, 조금만 가만히 있으면 빌붙는 파리떼. 깔끔한 대도시였던 모스크바와는 정반대의 시골이다. 딱 하나, 같은 것이라고는 반쯤 사기꾼들인 택시 운전수들 뿐이었다. 어디서나 들려오는 그 발음. "딱시-?"

 

자그마한 하바롭스크-노비 공항

지켜지지 못한 톨스토이의 교훈

시내까지는 1번 트롤리버스를 타고 간다. 가격은 24 루블, 여느 러시아 도시와 다르지 않다. 모스크바에서 남은 동전으로 아주 요긴하게 지불했다. 버스에 타고 있자니 파리들이 또 달라붙는다, 신경을 안 쓰고 있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따갑게 물고 도망가는 의문의 벌레.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리 러시아라고 해도 시골에는 무서운 모기떼가 사는 게 아닐까. 요즘 한국에서 멸종된 바이러스는 예방접종도 안 받았을 텐데, 여기서 말라리아라도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걱정하던 나는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찾아보니 러시아는 말라리아 접종이 필요한 여행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생각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버스에 타 있을 당시 나는, 비좁은 오로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두 바퀴 돌고, 그러고도 인터넷을 못 가입했는데 아이패드도 부숴먹고, 파리 같은 딱시맨들에다가 시달리다가, 파리에게까지 물려버린 상태였다. 나는 톨스토이의 '네 상황이 나쁠 때 남을 도와라'라는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생각엔 톨스토이도 이걸 못 실천해서 평생 아내랑 싸운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이때부터 여행메이트를 대하는 태도가 안 좋아졌던 것 같다.

 

러시아의 버스들은 대부분 내부가 허접하다.

 

아무튼 급성 말라리아 중독으로 죽지도 않았고, 버스가 폭발하지도 않았고, 룸메이트가 시니컬해진 나를 못 견뎌 버스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아줬던 덕분에, 무사히 레닌 광장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일단 시내로 가자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받아놓는 2GIS 덕분이다. 이때도 이미 비실비실하던 블랙베리 Q10에서 용케도 잘 돌아가준 투기스 지도 덕분에 시내는 어떻게 가는지, 어디에 통신사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충성스러운 1위 통신사 고객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꿀벌 모양 간판이 보인다. 통신사 Билайн의 로고다. 그렇지만 우리는 비라인을 무시하고 왼쪽으로 돌아가, 다른 통신사에서 가입한다. 순전히 나의 엠떼에스мтс에 대한 이상한 신뢰 때문이다. 의외로 통신사를 바꾸는 것은 싫어하는 나는, МТС 심카드를 다섯 개째 쓰는 중이다. 아무튼 엠떼에스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를 설득해서 50미터쯤 떨어진 엠떼에스에서 심카드를 샀다. 이때만 해도 러시아어를 끔찍하게 못 했던 기억이 난다. 심...까르따...까지 알아들은 직원은, '외국인이라니,' 흥미로워보이는 눈빛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해줬다.

 

친구의 아이폰은 문제없이 심카드를 인식하는데, 내 블랙베리는 카카오톡이 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으나, 이때 카카오톡이 동작해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초심을 잃은 카카오톡과 씨름하는 사이, 친구는 민박에 컨택을 했고, 주소를 받아 적어 왔다. 2GIS에 쳐보니 다행히도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11번 버스를 타면 바로 갈 수 있다고 표시되어있다.

 

버스와 '바가지'

11번 버스에서는 짐 비용을 추가로 받았다. 친구한테는 캐리어 비용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바가지 쓴 게 아닌가, 내심 생각했던 60 루블. 나중에 버스 사진을 보니 캐리어багаж[발음: 바가지!]는 30 루블을 더 받는다고 적혀 있었다. 내리고 나서 물어보니, 친구는 내가 '바가지 때문'이라고 한 걸 진짜 바가지로 알아들었었다. 조금 더 발음을 굴렸어야 했나. 첨언하자면, 러시아 버스는 케바케라서 안내문서 상에는 받는다고 적혀있어도 막상 안 받는 버스도 꽤 있다. 오히려 조심하라고 해주거나 내리는 걸 도와줄 때도 있음... 내가 러시아에서 택시를 안 타는 건 상대적으로 버스에서 느끼는 게 많아서이기도 하다.

 

2018년 5월 21일부터 캐리어는 30루블을 더 받습니다.


참고한 글

https://blog.naver.com/cpls_celia02/221316563518

 

[DAY1] ① 하바롭스크 공항/ 유심,막심어플,호스텔

드디어 아침 6시에 공항에 다시 도착. 티켓을 새로 발급받고 '비정상 출항 확인서'를 받았다. 나중에 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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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sunjin85/221575960076

 

[Russia #2] 하바롭스크 공항에서 유심 구매하기, 막심 어플로 택시 이용하기

[2018. 4. 28.(토) ~ 5. 2.(수)]​하바롭스크공항에서 유심구매, 막심이용하기- 길쭉동글부부의 러시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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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leedoh93/221234716466

 

18년 3월 러시아 여행 - 9일 하바로프스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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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톡 여행기 전체 목록

  1. 2020.04.04 - 하바롭스크 여행기: #1 헤맴의 연속
  2. 2021.01.17 - 하바롭스크 여행기: #2 또 시작된 헤맴
  3. 2021.01.18 - 하바롭스크 여행기: #3 갈등과 깨달음
  4. 2021.01.27 - 하바롭스크 여행기: #4 비 내리는 하바롭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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