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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여행기

하바롭스크 여행기: #2 또 시작된 헤맴

by 누에고치 2021. 1. 17.

또 시작된 헤맴

사실 나는 버스에서 내리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지도상으론 가까운 곳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아니었다. 믿어왔던 내 독도법이 고장났다. 내가 헷갈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로즈나야 병원 때문. 

다로즈나야 병원과 주변부 지도 (Yandex.Maps)

 

다로즈나야 병원Дорожная клиническая больница ОАО РЖД은 러시아 국영철도회사 РЖД와 연관된 병원인데, 보로네시카야 대로와 키마 로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이 있던 보로네시카야 대로에서 숙소가 있던 작은 골목인 키마 로까지 가려면 병원 건물을 북이든 남이든 크게 돌아가야 하는데, 지도에 병원 내부의 길까지 너무 상세하게 적혀있던 탓에 병원을 가로질러 가는 게 가장 빠르다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외부 담장 때문에, 병원을 가로질러서는 갈 수 없었다.

 

덕분에 경찰서 주차장도 가로질러 가보고, 철도청 건물에도 들어가 보고, 병원 건물에 도대체 뭐라고 써져 있는 건지 번역기도 돌려보고, 처음 수도 밖 러시아로 가보는 사람 치고는 별 이상한 경험을 다 해볼 수 있었다. 결국 진흙탕에 가까운 키마 길을 찾아냈고, 보내주신 주소 바로 옆까지 왔다.

 

문제는 아무 데도 간판이 없었고, 민박집 블로그에서 친구가 찾아놓은 사진과 일치하는 집도 없었다는 것. 통화가 닿긴 했는데, 위치를 알려줘도 어딘지 모르겠다는 민박 관리자의 말에 나는 주저앉았다. 차 타고 지나가던 사람 붙잡아서 여기가 킴길 oo번지 맞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별 이상한 시도를 다 하다가 뒷문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던 민박집 사람들에게 '발견'당해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반대편으로 넘어온 모습. 이때까지는 내 독도법을 신뢰하고 있었다.

 

휴. 내가 숙소를 예약했으면 적어도 주소랑 주변 사진 정도는 알아놨을 텐데. 이렇게 허술하게 준비는 안 했을 것이다. 늘 직접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이 여행의 대부분을 계획했던 것 같다. 이런 성격은 지금까지도 고치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숙소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다.

 

안심스런 저녁

숙소에 들어왔다. 한인민박이라 민박 안에서부터는 러시아어를 쓸 필요가 없었다.

 

나이가 있으신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게 아니라, 20-30대 정도의 젊은 분이 운영하시고 현지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이 같이 있는 형식이라 아무래도 격의 없이 같이 놀다가 가는 분위기긴 했는데, 그 어디서도 조용한 1인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숙박 형태는 아니었다.

 

밤 산책

밤에 잠깐 밖으로 나와서 작은 마트에 들렀다. 친구는 에스키모인가, СССР인가 러시아 아이스크림을 샀고 나는 조금 큰 물이랑 당근 들어간 샐러드류를 샀던 것 같다. 러시아 시장에서 파는 흔한 샐러드/반찬류인데, 이때 동전까지 맞춰서 내고 물건을 사는 게 왜 그리 신났는지 모르겠다.

 

그냥 동네 마트였지만 뭔가 진짜 러시아에서 첫 물건을 산다는 느낌이 들었던 곳이다. 가족 없이 온 첫 여행이었고, 이 전까지도 돈을 낸 곳은 버스비와 통신비가 전부라서 더욱 그랬다. 나오는 과정에서 맡은 특유의 러시아 냄새와 정교회 성당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마저 아름다워보였다.

 

[좌] 주변 성당 [우] 작은 가게

킹크랩

저녁을 어떻게 처리할지 주변 식당을 한참 알아봤는데, 마침 이날 민박 차원에서 킹크랩을 대량 구매해서 싯가보다 싸게 먹는다고 해서 900 루블(18,000원)을 내고 먹기로 했다. 얼마나 싸게 먹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맛있었다. 별도로 양념이 들어간 것은 아니고, 그냥 집에서 대게를 먹듯 쪄먹은 것이라 딱히 코멘트할 것은 없겠다.

 

킹크랩을 먹고 느즈막히 잤던 것 같다.

 

1일차 (27수) 지출비 정리

  • 버스 24 (1번 트롤리버스, 공항-시내)
  • 통신비 310
  • 버스 60 (번호 불명, 시내-숙소 앞)
  • 민박 5700
  • 마트 (물, 반찬) 214
  • 킹크랩 900

 

항목별 소계

  • 교통비 108
  • 통신비 310
  • 숙소 5700
  • 식음료 1114
  • 총 7208 루블(약 144,000원), 숙소 제외 1508 루블(약 30,000원)

 

2018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톡 여행기 전체 목록

  1. 2020.04.04 - 하바롭스크 여행기: #1 헤맴의 연속
  2. 2021.01.17 - 하바롭스크 여행기: #2 또 시작된 헤맴
  3. 2021.01.18 - 하바롭스크 여행기: #3 갈등과 깨달음
  4. 2021.01.27 - 하바롭스크 여행기: #4 비 내리는 하바롭스크
  5. 2021.07.19 - 하바롭스크 여행기: #5 이틀차 저녁식사, 중심부 산책
  6. 2021.07.21 - 하바롭스크 여행기: #6 역사박물관과 프라오브라젠스키 성당
  7. 2021.07.23 - 하바롭스크 여행기: #7 홀로 산책하기 좋은 도시... 그리고 새벽의 파티.
  8. 2021.07.25 - 하바롭스크 여행기: #8 조지아 음식! 삼사! 하바롭스크 마지막 날.
  9. 2021.07.27 - 하바롭스크 여행기 #9: 친구와 단둘이 러시아 횡단열차 타기 (하바롭스크 - 블라디보스토크)
  10. 2021.08.01 -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0: 구경, 구경,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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