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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유학일기

[러시아 유학일기] #33 / 모든 걸 아는 선생님

by 누에고치 2020. 5. 2.

일전의 일기에서 내가 정신체력적으로 쳐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두었다.

 

어제는 심지어 자신의 학생이 처지는 걸 선생님도 느끼셨는지, 쉬는시간에 잠깐 개인통화로 요즘 처음 봤을 때랑은 너무 다른 것 같다고 하시더라. 사실 특히 이 선생님 수업이 힘든데, 첫째로는 난이도 자체가 내 수준보단 살짝 위기도 하고, 둘째로는 4명이 다 참여하는 수업이여서 말할 기회도 적고, 셋째로는 과제를 안 해가면 아무것도 못 얻는 류의 수업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텍스트가 유독 어려워서 과제하는데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대답했는데, 선생님은 역시 다 알고 계셨다. 4-5시간 걸린다면 그건 문제겠지만 전부 독해하는데 2시간 내외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냐고 하셨다. 즉 '텍스트가 어려운 건 당연하고 그걸 네가 단어찾고 해석했어야지'라는 말씀. 맞는 말이다. 이 수업의 주된 교재는 1-2쪽 분량의 텍스트와 단어묶음(유의어/반의어/용법)인데, 단어묶음이야 예습을 안 해가도 임시변통으로 번역기를 쓰면 되겠지만 본문을 안 읽어가면 사실 관련 진도 나가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결국 하루종일 방에만 앉아있으니 집중력을 조금 잃은 것 같다고 실토했다. 선생님도 그런 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사실 다른 학생들 때문에 텍스트 자체를 바꾼다거나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3일 연휴동안 잘 쉬어서 체력을 회복해보라시더라. 벌써 세 달 넘게 공부했는데 얻어가는 게 없으면 안 되니까, 아직 한 달 남았으니 그 동안이라도 열심히 해보자고.

 

다 맞는 말이다. 나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혼 아닌 혼을 들으니 적어도 이 선생님 수업에는 과제를 해가게 될 것 같다. 뭐든 혼나거나 독촉받아서 어느정도의 강제력이 생겨야 하게 되니 원... 스스로가 학자형 인재는 아니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래도 선생님 앞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털어놓으니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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