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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문화생활

[러시아 문화생활] #18 / 소련영화 리뷰: 인형 (1988)

by 누에고치 2020. 4. 16.

 

인형

Куколка, 1988

 

감독 이삭 프리드베르크 Исаак Фридберг

주연 스베틀라나 자시프키나 Светлана Засыпкина

 

사실 나는 러시아, 러시아 하면서도 한 번도 러시아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삭 프리드베르크 감독의 1988년 작, <인형>은 사실 처음으로 완주해본 러시아 영화다. 사실 소련 영화니까 '러시아' 영화는 본 게 없긴 하지만... 예전에도 타르콥스키 영화나 '회사원 이야기'를 본 적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본 영화로는 <인형>이 처음.

 

영화스튜디오 '모스필름'의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로 공개되어 있다. 웃긴 건 모스필름 앱을 깔아보면 유료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 설사 앱에 작품이 더 많더라도, 만듦새도 좋지 않고 유료인 앱을 굳이 깔아써야 하는 걸까? 영화는 며칠 전인 2020년 4월 10일에 업로드되어 https://www.youtube.com/watch?v=-mcLhNOgrKg에서 볼 수 있다.

 

 

* 영화를 자막없이 순 러시아어로 봤기 때문에 이해한 내용이 전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줄거리와 간단한 감상

영화는 주인공인 기계체조 메달리스트 타냐가 허리 부상으로 잠시 쉬며 일반 학교에 다니게 되는 이야기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실시된 소련 말기 특유의 분위기가, 특히 체조영웅과 고등학생이라는 두 장치를 통해 더 짙게 풍기는 영화라서 정말 좋다.

 

극 초반부에서 타냐가 기계체조 연기를 마치고 아디다스 점퍼를 걸치는 순간은 그야말로 입덕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80년 올림픽의 선수복을 고를 때 나이키는 너무 미국적이라 아디다스를 도입한 소련 지도부의 결정은 러시아 내 아디다스 열풍을 몰고 왔다, 라는 문장이 사실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니 단번에 이해됐다. 나도 소련사람이었다면 단번에 말했을 것이다. "저렇게 멋진 옷이 있다니! 어떻게 구할 수 있지?"

 

소련 패치가 박힌 아디다스 점퍼를 일상복/선수복으로 입는 모습.

 

학교에 다니게 된 이후 중반부의 전개는 쉽게 말해 '잘나가는 전학생'이다. 체력도, 정권의 비호도, 돈도 있는 타냐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시비거는 기존 일진들을 단련된 체력으로 제압해버리고, 인민의 영웅이라는 타이틀 아래 교장 선생님에게 치마가 아니라 바지를 입을 것을 요구하고, 당돌하고 논리적인 언사로 담임선생님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이 와중에 '자기 사람'을 챙기는 인간적인 보스다움까지 보여준다.

 

그렇지만 주인공 타냐의 내적 갈등은 계속된다. 담임선생님과의 언쟁 속에서, 뭔가 어색한 집의 분위기에서, 조국의 영웅이었던 소녀는 교실과 복도, 방에서 기계체조를 하며 긴장을 고조시킨다.

 

학교에서. 타냐가 곧잘 입고 나오는 티셔츠에는 '페레스트로이카'가 적혀 있다.

 

러시아어를 배우는 측면에서

이제 겨우 2회차 영화 시청이다보니 드라마틱하게 러시아어가 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술했다시피 소비에트 말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게 가장 좋은 수확인 것 같고, 영화 자체도 꽤 독특하게 흥미로운 소재라 재밌게 봤던 것 같다.

 

아쉬웠던 것은 중후반부 상당부분이 어두운 배경에서의 디알로그 + 담임선생님의 모놀로그로 진행되는데, 내 단계에서는 그냥 알아들을 수 없는 쓸모없는 부분이었다. 인물들의 행동을 직접 보면서 오디오를 들어야 어떤 상황에서 특정 표현이 쓰인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얼굴이랑 검은 화면만 보이니 그냥 라디오를 듣는 느낌이었다.

 

주절거림과 마무리

사실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다큐멘터리인줄 알고 시청했는데, 그냥 국가대표를 소재로 삼은 영화였다. 어린 시절의 김나지움 트레이닝 모습을 찍고, 그 중 하나를 캐스팅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약간 실험적인 시도여서 청자로 하여금 약간의 헷갈림을 주는 듯하다. 러시아어를 못해서 전후내용을 연결짓지 못하다보니 전반부 - 중반부 - 후반부 내용의 연결이 잘 안 된 채로 영화 감상이 끝났다. 다른 영화 100편을 보고 돌아오겠다.

 

주연배우 자스프키나의 연기가 굉장히 맘에 들었고 배우한테도 빠져서 연기생활을 더 했나 찾아봤는데, 안타깝게도 배우의 커리어를 쭉 이어가시진 않은 것 같다. 원래 체육을 공부하던 학생인데 영화를 찍고, 그 후로는 체육 커리어로 돌아가신 것 같음. 여러모로 특이한 시도다.

 

아무쪼록 고르바초프 초중기인 1988년에 소비에트 체육계열 학생이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면 어떻게 될까? 라는 물음에 대해 현실적인 투영을 바탕으로 드라마적인 요소를 입혀 만들어낸 작품이라, 재밌고도 의미있게 보았다. 나도 러시아어를 그닥 알아듣지 못한 상태로 봤으니, 혹시 관심이 있다면 러시아어를 모른 채 감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참고 사이트

영화와 관련된 내용들은 다음 영화사이트를 참고하였다.

http://www.kinoglaz.fr/u_fiche_film.php?num=3809

https://www.kinopoisk.ru/film/45023/

https://www.kino-teatr.ru/kino/movie/sov/3361/foto/

https://www.kino-teatr.ru/kino/acter/c/sov/1585/forum/print/

https://cinema.mosfilm.ru/films/3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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