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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영화-드라마-연극

[연극 리뷰] 라이어 1 - 가벼운 소재, 불편한 웃음

by 누에고치 2021. 4. 20.
2016년 동아리 문집에 기고했던 글의 일부입니다. 5년 전 작성된 내용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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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24

 

이달 초, 현충일 연휴로 이어지는 금요일에 우리 문학 동아리에서는 연극을 보러 갔다. 연극을 알아보고 예매하는 것부터 금요일의 대학로까지 가는 과정도 복잡했으나, 연극을 관람한 뒤 이 과정 못지않게 마음이 복잡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 복잡한 과정과 심경에 대해 잠시 종이를 빌려 조금이나마 털어놓으려고 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부분의 연극은 저녁이나 주말에 올려지고는 한다. 그래서 금요일 3시에 연극을 보려던 우리는 연극을 찾기가 꽤 어려웠는데, 딱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첫째로 ‘동치미’, 둘째로 ‘라이어’. 카톡 투표를 통해 라이어가 압도적인 표차로 선택되었다. 아마 동치미를 ‘감동적인 가족극’으로, 라이어를 ‘재밌는 코미디 연극’으로 소개한 덕이 컸던 것 아닐까?

 

연극의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스미스가 어느 날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두 동네에서 동명이인에 대한 실종신고가 동시에 있었고, 게다가 스미스가 병원에서 다른 동네, 즉 후처의 주소를 부르는 바람에 이를 미심쩍게 여긴 경찰이 조사를 나왔다. 두 집 살림이 들통날 위기에 처한 스미스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윗집 친구와 함께 거짓말을 자아내는데, 이 과정에서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아 점점 말조차 되지 않는 핑계들을 돌려막게 되며, 오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끝에 결국 모든 걸 털어놓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연극의 짜임은 내가 연극 하면 생각하던 감동적이고 교훈이 있는 줄거리라기보다는, 순간순간 말장난이 이어지며 웃음의 반복을 유도하는 단순 코미디, 그러니까 주말 밤에 방송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한두시간으로 길게 늘인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 연극 선생님께 연극 전반에 대해 여러가지 여쭤본 적이 있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문학부에서 라이어를 봤다는 말을 꺼내자, 불륜을 소재로 한 연극이라 학생들이 보기엔 적절하지 못하고, 일종의 블랙 코미디에 속하는 극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까지는 전부 좋다. 동아리 부원들끼리 단체로 온 것이니,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한 고찰이나 슬픈 연극보다는 가볍고 재미있고 웃음과 함께하는 이런 연극이 오히려 적절할 수 있다. 저녁 시간에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막장 드라마도 많은데, 비슷한 연극을 한 번 보면 뭐가 어떤가?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불륜과 동성애라는, 윤리적으로 심각한 사안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과 비판 없이 그저 웃음거리로 사용한다는 데에 있다.

 

같은 불륜을 소재로 하는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를 예로 들어보자. 안나 까레리나에서는 불륜이 이루어지는 미묘한 과정을 그려내고, 안나와 브론스키가 서로에게 처음과 같은 모습, 변함없는 모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결국 파멸하는 과정이 자세하고 깊은 고찰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톨스토이는 이들의 사랑이 파멸하는 과정을 통해, 단순히 불륜을 비판할 뿐 아니라 러시아 귀족들의 위선과 ‘변함없는 사랑’의 추구가 얼마나 헛된 일인지 말하며, 변화를 통해 사람은 성장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반면 라이어에서 불륜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아무리 내용을 곱씹어보아도, 말장난을 전개시키기 위한 극의 장치 중 하나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물론 라이어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불륜이 옳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을 비친다. 계속 안절부절 못해하고, 불륜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신문지를 씹어먹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고민은 이내 익살과 농담에 묻히고, 오히려 뒤따라올 익살과 농담을 끌어주는 역할로 많이 쓰이기도 한다.

 

불륜을 익살의 소재로 쓰는 것은 사실 약과이다. 더 큰 문제는, 동성애를 조롱하고 농담거리로 쓰는 일에 있다. 세상에 어떤 정상적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의 엉덩이를 쓰윽 훑고 지나가며, 처음 보는 남자에게 성적인 행위를 하며, 명백히 남편이 있는데도 상대방을 유혹하는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는 달리 어떤 괴물이나 굉장한 변태로 묘사되는 것은 전형적인 동성애자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적 시선인데, 이것을 이 연극이 그대로 답습하고 재현한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연극을 포함한 모든 문학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어나가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사회의 전형적인 선입견을 그대로 재현해 동성애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니. 분명 일전에 본 연극인데도 불구하고 그때는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는 기억이 나는데, 이는 그 사이 최근 각종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그들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어쩌면 내가 그 소수자에 들 지도 모르며,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하는 지금의 사회는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극 속의 인물들은 게이를 굉장히 부정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고, 심지어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치기까지 한다. ‘진짜 게이’ 역의 배우는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등장하며, 마치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된 것처럼 말한다. 과연 이 연극의 각본가에게 성소수자들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물론 연극을 보던 중에 나도 웃었다. 하지만 왠지 연극을 보고 나서도 개운치 않았던 것은, 그것이 억지 웃음이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성소수자들의 결혼이 합법화되고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하는 일부 기독교도들이 젊은 층 사이에서 두고두고 비판받는 사회에서, 이런 연극이 젊은이들의 거리인 대학로에서 국민 연극이랍시고 17년 동안이나 공연되고, 학생들이 단체로까지 와서 관람하다니 확실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글을 쓰는 와중에도 부원들이 보낸 감상문들이 하나씩 도착하고 있었다. 라이어 2, 3탄을 볼 수 있었다면 좋겠다는 감상문 속 내용을 보고, 이 지면을 빌어 내년에는 라이어가 아니라 다른 좋은 연극을 찾아보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 모두 웃고 즐길 수 있던 시간이였지만, 이것을 보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알아보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돈을 걷고, 그 먼 대학로까지 갔어야 했을까 싶은 의문이 든다. 아직도 던지고 싶은 의문이 많지만, 이미 충분히 길고 지루한 글에 지루함을 더 넣는 꼴이 될 것 같아 그만하도록 하겠다. 연극을 위해 준비한 모든 행위가 그 결과에 비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펜을 내려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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