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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세이,레포트

『P세대』: 소련 청년들은 왜 펩시를 사랑했나? (빅토르 펠레빈, 1999)

by 누에고치 2021. 4. 8.

빅토르 펠레빈의 장편소설 P세대[1] 1999 쓰여진 작품으로, 소련 해체  방황하는 신러시아의 20-30 청년들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줄거리 소개

내용은 몽환적이고 모호합니다. 콜라를 든 원숭이 이야기에서 시작한 소설은 이내 청년 바빌렌 타타르스키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광고산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청년인듯 하던 그의 이야기에 버섯과 마약이 합쳐지며 그가 이슈타르 여신의 계획에 이용된 '지상의 남편'이라는 사실로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이슈타르 여신의 초상화.

소설은 '바빌렌'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아시아의 신화를 대거 차용하여 진행됩니다. 반면 코카콜라와 컴퓨터로 작업되는 광고업이라는 주인공의 세계, 그리고 마약과 구슬 이야기는 언뜻 보아서는 전혀 서로 관계가 없는 개념들입니다.

 

그렇지만 펠레빈은 이 작품에서 신화적인 등장인물 구도에 절묘하게 자본주의화되어가는 러시아를 끼워맞추었고, 여기에 더해 소설 전체를 궤뚫는 구슬 이야기와 마약을 통해 등장하는 이야기까지 합쳐냄으로서 굉장히 독특한 효과를 내었습니다.

 

동력을 잃은 소련의 펩시 세대

문학대학에서 소련내 소수민족의 언어를 공부하던 타타르스키는 소련이 해체되자 자신의 전공이 가치를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외견상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주위의 모든 것들은 (...)  늘어져 였습니다." (p. 42)

가치를 잃은 그가 보기에 해체된 소련의 거리는 동력을 잃었고,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펩시콜라를 마셔대는 것 뿐이었습니다. ('P'세대의 어원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이념을 내세워 미국과 경쟁하며 달려갔지만, 90년대에 다다르면 소련이 이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됩니다. 연방이 해체되고 자유가 찾아오길 바라는 사람도 많았고, 결국 실제로 해체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소련의 해체가 불러온 것은 끝없는 침체 뿐이었습니다. 루블화의 환율은 처참했고, 거리는 텅 빈 채 거지로 가득 찼다.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원되었고, 소비에트 우주비행사들의 명예와 상징성은 미국의 30만 달러보다 1/10배 적은 3만 달러로 치환되어버렸다. (p. 154)

 

펩시를 마시는 소련 학생들. 1985.

펩시의 P를 따서 펠레빈이 만든 상징적인 용어 P세대(generation П)는 많은 러시아인의 공감을 얻었고, 널리 사용됩니다. 이정현이 말하듯, 펩시는 "불길한 자유의 맛"이이었죠.[2] 유망한 전문가가 되었어야 할 소련의 인텔리 젊은이들은 순식간에 타타르스키와 같이 방황하는 영혼으로 전락했고, 펠레빈은 이 현상을 잘 포착하여 소설화한 것입니다.

 

체 게바라와 이슈타르 여신

그런데 대체 '체 게바라와 이슈타르 여신'이라는 생뚱맞은 상징은 뭘까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얼추 감이 오실 겁니다.

 

방황하던 바빌렌은 동기의 제안으로 언어적 감각을 살려 광고사에 취업하게 됩니다. 전공자답게 언어적인 능력이 있던 그는 금세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방송 조작에까지 가담합니다.

 

어느날 골동품점에서 산 플랑셰트 판에서 체 게바라의 형상이 나와 말을 걸고, 친구의 권유로 먹은 마약버섯과 우표는 환각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에서 환상 경험은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진실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체 게바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고 가상으로 가득찬 세계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환각의 세계에서도 이슈타르 여신의 정보와 대비되는 진실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알쏭달쏭했던 비유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명백해집니다. 이슈타르 여신의 목표는 인간을 구슬처럼 실에 꿰어 끝없이 하늘로 올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펠레빈이 바빌론 신화에서 착안해 만들어낸 비유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성공'을 외칠까요?

모든 인간들이 자신만의 목표가 아니라 기약없는 명예, 돈, 성공을 쫓게 만드는 것이죠. 자본주의의 작동기제인 '욕심/탐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리고 광고는 바로 사람들이 이 멍한 목표를 정말 중요한 가치이자 유일한 지향점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결국 타타르스키는 환각세계와 게바라가 말해주는 '구슬로부터의 탈출'을 실행하지 못하고, 광고계에 남아 '지상의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전신이 스캔되어 영원히 광고 속 허상세계에 남게 됩니다. 진실처럼 느껴지는 광고, 그리고 광고 속 스캔된 타타르스키는 만들어진 허구이고, 오히려 명백한 허구로 취급되는 유령과 환각세계가 진실에 더 가까웠던 셈입니다.

 

'지상의 남편'이 되는 과정은 기술적으로 모션 캡쳐와 비슷한 듯합니다.

 

체르누하와 글래머

라승도는 저서 '시네마트료시카'[3]에서 소련 붕괴 후의 영화에 두 가지 특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 체르누하(어두운 디스토피아적 분위기)
  • 글래머(자본주의적 현혹현상)

 

소련이 무너진 뒤 보잘것없는 러시아의 현실(체르누하)을 자본주의의 마술, 광고(글래머)로 가리고 포장해낸다는 것이죠.

 

라승도는 그러면서 콘찰롭스키의 영화 <글랴네츠>를 예로 듭니다. 시골 사람이던 주인공 갈랴는 모스크바로 상경해 화려한 광고모델이 되었지만 원한을 품은 옛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미소지은 모습은 코팅된 잡지에 여전히 인쇄되어 있고, 잡지를 비추는 장면은 글래머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P세대>에서도 주인공은 체르누하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지상의 남편'이라는 광고 속 허상으로 가리기를 선택한 것이구요.

 

글랴네츠(Глянец, 2007) 포스터

마무리

빅토르 펠레빈의 <P세대>는 소련 붕괴 이후 방향을 잃은 사회와 젊은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념적인 가치가 모두 사라져버리고 자유사상이 들어오자 러시아는 미국에 비해 훨씬 못 사는 나라로 비쳐질 뿐이었고, 젊은이들이 마셔대는 펩시는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었습니다.

 

동력을 잃어버린 러시아는, 타타르스키가 그랬듯,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합니다. 프로파간다 문구는 순식간에 광고와 캐치프라이즈로 바뀌고, 소수민족어 전공자인 그는 짧은 시일에 광고계의 거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바빌렌이 계속해서 불안을 느낍니다. 러시아 사회는 자본주의 도입 이후 큰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동력잃은 내면을 화려한 자본주의와 광고로 포장한 결과였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타타르스키와 같이 여러가지 계시를 받고 영혼의 경고까지 받는 인물조차 광고계에 남아 허위를 지속시키기를 선택했습니다.

 

하물며 우리와 같은 소시민들은 멍하게 하늘로 향해가는 구슬의 신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펠레빈은 제기하는 근본적인 물음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궤뚫습니다.

 

 

참고문헌

단행본

라승도, <시네마트료시카>,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15.

빅토르 펠레빈(박혜경 역), <P세대>, 파주: 문학동네, 2012.

 

 

인터넷 자료

이정현, 웹진 <문화다>, " [이정현의 이방인 문학 여행] 세상의 종말은 그냥 텔레비전 방송일 뿐",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letters_en&ps_boid=17&ps_mode=modify#none (접속일: 2019-12-05)

 

이미지 자료

commons.wikimedia.org/wiki/File:Myths_and_legends_of_Babylonia_and_Assyria_(1916)_(14801964123).jpg

commons.wikimedia.org/wiki/File:1981-may-25-Generation-Pepsi-Moscow.jpg

commons.wikimedia.org/wiki/File:Impossible_staircase.svg

https://commons.m.wikimedia.org/wiki/File:Optitrack_Studio.jpg

ru.wikipedia.org/wiki/%D0%A4%D0%B0%D0%B9%D0%BB:Kinopoisk.ru-Glyanets-559934.jpg

이미지의 저작권은 위키피디어/위키미디어 재단의 정의에 따릅니다.

 


[1] 필독목록에 제시된 것처럼 문학동네의 판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빅토르 펠레빈(박혜경 역), <P세대>, 파주: 문학동네, 2012.

[2] 이정현, 웹진 <문화다>, " [이정현의 이방인 문학 여행] 세상의 종말은 그냥 텔레비전 방송일 뿐",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letters_en&ps_boid=17&ps_mode=modify#none (접속일: 2019-12-05)

[3] 라승도, <시네마트료시카>,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15, pp. 6-15.

 

문서정보

원제: P세대: 소련 해체 후의 청년들

부제: 빅토르 펠레빈의 <P세대>를 읽고 쓰는 에세이

 

* 본 레포트는 학과 및 강의 과제로 제출된 것으로, 작가의 별도 허락이 없는 한 복제 및 무단 전재를 엄격히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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